“도리깨가 허공을 가른다. 청명한 가을 하늘에 춤을 추면서.
추수한 들녘에서, 집 마당에서.
콩알이 낟알이 튀어나와 사방으로 흩어진다.” 왠 도리깨질?
얼마 전 라운드를 같이 했던 분 얘기다.
필자도 나이 들수록 비 거리가 줄어 들고 있지만 아직은 평균 이상의 거리를 내고 있는데 그날 같이 공을 쳤던 한 분이 필자보다 평균 30야드 이상을 때려 내는 걸 보고 자존심이 약간 상했다.
스윙 폼이 교과서적인 것도 아니고 공을 치고 나서 왼발 쪽으로 쓰러지듯이 피니시를 하는데 공은 멀리 날아갔다. 굳이 이야기 하자면 체중이동을 과감히 하고 몸을 실어 공을 때려낸다는 정도 였다. 물론 가끔 실수도 했지만..
나이도 엇 비슷, 체격도 엇 비슷, 왜 그렇게 거리가 많이 나는지 궁금해서 내내 질문을 해 댔다.
“젊을 때 다른 운동을 했습니까?”, “평소에 fitness, 요가, 스트레칭 등 체력 훈련을 많이 하십니까?” 대답은 다 NO였다. 그러면서 더 젊을 땐 300야드 가까이 쳤다 하니 약도 오르지만 직업 의식이발동해 점점 더 궁금해 졌다.
밥을 먹을 때 였다. 내가 계속 질문을 해 대니 본인도 의아했는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 그 비밀은
‘도리깨질과 도끼질’ 이었다.
시골 출신인 그 분은 초등학교 때부터 서울로 유학 오기 전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의 매일 산에서 도끼로 찍어 나무를 해오고 철 되면 도리깨질을 했단다.
골프에서 거리를 내는 가장 중요한 근육은 허리 근처의 core근육이다. 이 근육을 옆으로 틀어주는 근육이 비 거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도끼질과 도리깨질로 어릴 적부터 단련한 허리와 옆구리의 회전 근육이 이 분의 비거리를 엄청나게 나가게 했던 것이다. 내 설명을 듣고서야 본인도 이제야 비밀을 알았다고 좋아했다.
도리깨질이란?
도리깨는 곡식의 낟알을 떠는 데 쓰는 농기구다. 긴 작대기 끝에 서너 개의 휘추리(국어사전:가늘고 긴 나뭇가지)를 달아 휘두르며 친다. 요즘은 농가에서 탈곡기나 콤바인을 사용하므로 보기가 힘들어진 농기구지만 만들기가 쉬우면서도 능률이 많이 올라 오늘날에도 전국적으로 쓰이고 있다. 자루 끝에 연결되어 있는 휘추리는 3개의 물푸레나무를 새끼 또는 노끈으로 납작하게 엮어 만들며 자루의 길이는 약 3m다. 물푸레나무를 써야 나무가 단단하고 야무져서 갈라지지 않는단다.
(노부부가 박자 맞춰 도리깨질 하는 모습 / 출처: 중앙일보 / 2009.10.19. 충남 서산시 부석면)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들이 도리깨질 하는 것을 봤는데 마치 탱고를 추듯이 오른발 왼발 스텝을 밟아 가면서 아주 리드미컬하게 동작을 했다. 특히 들었다가 내려치는 동작에서 좋은 골프 스윙의 전환동작(백 스윙에서 다운스윙으로 전환하는)을 연상케 했다. 가볍게 들었다가 가볍게 내려와서 곡식을 내려칠 때만 스냅으로 살짝살짝 내려쳐도 들깨나 콩알이 껍질에서 나와 튀는 장면은 신기했고 정겨웠다. 도리깨질은 익숙하면 작은 힘으로도 타작할 수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분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고 도리깨를 망가뜨리기도 한다. 보기에는 쉬운 것 같아도 몇 번 휘두르면 힘이 든다. 그러나 앞사람과 박자를 맞춰서 탁탁 치다 보면 신이 나서 힘든 것도 잊고 도리깨질을 하게 된다.
그 분도 그랬다. 골프 스윙할 때 도리깨질 하는 기분으로 한다고 했다. 그래야 부드럽게 쳐도 멀리 간다고 했다. 도끼질로 단련된 근육과 도리깨질로 임팩트 때 힘을 싣는 원리를 응용해서 공을 치는 것이 장타가 나는 비결이었다.
장하나 선수는 2013시즌 KLPGA 평균 드라이버샷 267.5 야드로 거리 랭킹 1위에 올라 있는데 방향을 잡기 위해서 임팩트 직후에 짧게 찍어 치는 느낌으로 팔로 스루를 한다고 한다. 검도 4단인 장하나는 검도로 단련된 근육과 검으로 촛불 끄는 연습을 많이 해 본 것이 임팩트 때 집중력을 키우고 장타를 내는데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2위(266.88야드)인 김세영 선수가 장타 비결로 꼽은 것은 자연스러운 스윙(natural swing)이다. 지나치게 upright한 스윙 보다 몸이 편한 대로 물 흐르듯이 하는 스윙이 스윙 스피드를 올리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163 센티로 큰 키는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12년간 해온 태권도가 체력을 올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됐고 “태권도의 타격이 골프의 임팩트와 비슷하다”고 했다.
도리깨질, 태권도, 검도, 권투, 심지어 공을 차는 축구까지 모든 운동이 임팩트는 같은가 보다.
어릴 적부터 골프만 할게 아니라 무슨 운동이든지 이것 저것 다 해 보는 것이 골프 선수로 성장하는 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 같다.
한국인들이 골프를 잘하는 것은 옛날부터 도리깨질, 도끼질 등과 또 안방에서 어머니들이 하던 바느질, 짚신 만들기 등으로 손 근육을 부지런히 발전 시켜온 DNA 유전자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