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씅! 이병 김 강덕 소대장실에 용무있어 왔습니다.!"
훈병 김 강덕에서 이병 김 강덕으로 구호가 관등이 바뀌었으며,
수료후 19-2(공병 중장비) 를 부여 받고서 훈단에서 일주일을 대기 상태로 있었습니다.
해병대는 전부 보병인줄 알았는데 그때 전 병과가 나누어져 있다는걸 그때 알았습니다.
대기 상테에 있으면서 훈병때 보다는 생활의 여유가 조금 생긴게 그리 행복할수 없었습니다.
나도다 반바퀴 선배인 641기 선배가 한명 있었는데 훈련소에서 다쳐서 포항 병원에서 6개월을 입원해 있다가
우리 기수에 와서 놀고 먹더니 후반기 교육을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선배와 동기 한명 그리고 저 3명이서 버스로 타고 마산에서 다시 진해 덕산 비행장으로 갔습니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해병대 발상지 덕산 비행장!
육군에 위탁 교육을 가게 되었는데 한 내무실에 육군 병력 30명에 저희 해병대원 3명.
ㅋㅋㅋ 쪽수에 많이 밀리더군요.
그러나 눈빛 만큼은 살기 넘쳤다고 자신 합니다.ㅋㅋㅋ
어딜 가던지 살 풀이는 해야되죠.^^
그날 밤.
같은 내무실에 있던 땅개들은 괜찮았는데 그들보다 선배 기수였던 내무실에 불려가 내무실 잠그어 놓고서
30대 3으로 다구리 붙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는 무슨 깡으로 그리 겁없이 싸웠는지 나중엔 내무실이 엉망이 되고 해병대 선배들과 땅개들도 몰려오고
난리가 아니었었습니다.그리고 파견 나와 있던 해병대 주임상사에게 불려가 질책을 들었지만 그리
많이 깨지지는 않았습니다.
주기적인 행사라서 그러려니 한답니다.ㅋㅋㅋ( 나중엔 문책 사항이 되어 위탁교육이 어렵게 되었다는 후문이...)
훈단에서 DI들이 전부 하사관 출신이라 후반기 교육을 받을때도 해병 하사관들이 있었는데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왜 그리 높아만 보이던지.ㅋㅋㅋ
고등학교때 군 위탁 제도라는게 있는데 졸업과 동시에 하사관으로 가는 제도 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리 높아만 보이는 해병대 하사관들도 육국 하사관들하고 그리 절친처럼
지내는데 그 육군 하사관들중 8명이 제 고등학교 2년 직속후배들이 있더군요.
후반기 교육 기간중에 그 녀석들 덕을 좀 봤죠.^^
주말에 외출 나갔다가 올때 통닭도 사다주고 먹거리가 떨어지질 않아 해병대 선배들과 저희들도 심심하진
않았습니다.( 그 고맙던 녀석들이 연락이 되질 않아 많이 그립습니다.^^)
훈련소 시절 부터 우리 기수가 해외 파병이 될것이다 라는 유언비어가 많이 퍼졌었는데,
시간은 흘러 년말이 다가 오고 있던 와중에 세계 정세는 전쟁 기류에 휩싸이게 됩니다.
걸프전이 터질것 처럼 위기촉발!
드디어 해가 바뀌어 1월달에 걸프전이 터졌습니다.
훈단에서 들었던 것 처럼 우리가 해병대가 파견이 된다는 말들이 솔찮게 나돌았습니다.
유서를 써 놓고서 손톱 발톱을 잘라 머리카락과 함께 노란 봉투에 밀봉을 해 놓고서 대기 상태에서
교육이 진행 되었습니다.(지금 생각하면 정신 차리라고 겁을 준 것이었던 겁니다.ㅋㅋㅋ)
교육 끝나면 실무에 배치되자 마자 쿠웨이트로 날아간다고 항상 긴장 속에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시간을 흘어 12주 교육이 끝나고 해병 1사단 공병대대를 찾아 꽃봉을 메고 버스로 타고 다시
그리 가고 싶지 않은 포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해가 짧은 겨울 저녁에 포항에 도착하여 다찌차를 타고서 사단본부에서 잠시 대기를 하던중
공병대대에서 다찌차가 오더니 납치 하듯이 아니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끌고서 데려 갔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다음에 다시 4탄으로...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길...이상 필~~씅!
훈병 김 강덕에서 이병 김 강덕으로 구호가 관등이 바뀌었으며,
수료후 19-2(공병 중장비) 를 부여 받고서 훈단에서 일주일을 대기 상태로 있었습니다.
해병대는 전부 보병인줄 알았는데 그때 전 병과가 나누어져 있다는걸 그때 알았습니다.
대기 상테에 있으면서 훈병때 보다는 생활의 여유가 조금 생긴게 그리 행복할수 없었습니다.
나도다 반바퀴 선배인 641기 선배가 한명 있었는데 훈련소에서 다쳐서 포항 병원에서 6개월을 입원해 있다가
우리 기수에 와서 놀고 먹더니 후반기 교육을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선배와 동기 한명 그리고 저 3명이서 버스로 타고 마산에서 다시 진해 덕산 비행장으로 갔습니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해병대 발상지 덕산 비행장!
육군에 위탁 교육을 가게 되었는데 한 내무실에 육군 병력 30명에 저희 해병대원 3명.
ㅋㅋㅋ 쪽수에 많이 밀리더군요.
그러나 눈빛 만큼은 살기 넘쳤다고 자신 합니다.ㅋㅋㅋ
어딜 가던지 살 풀이는 해야되죠.^^
그날 밤.
같은 내무실에 있던 땅개들은 괜찮았는데 그들보다 선배 기수였던 내무실에 불려가 내무실 잠그어 놓고서
30대 3으로 다구리 붙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때는 무슨 깡으로 그리 겁없이 싸웠는지 나중엔 내무실이 엉망이 되고 해병대 선배들과 땅개들도 몰려오고
난리가 아니었었습니다.그리고 파견 나와 있던 해병대 주임상사에게 불려가 질책을 들었지만 그리
많이 깨지지는 않았습니다.
주기적인 행사라서 그러려니 한답니다.ㅋㅋㅋ( 나중엔 문책 사항이 되어 위탁교육이 어렵게 되었다는 후문이...)
훈단에서 DI들이 전부 하사관 출신이라 후반기 교육을 받을때도 해병 하사관들이 있었는데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왜 그리 높아만 보이던지.ㅋㅋㅋ
고등학교때 군 위탁 제도라는게 있는데 졸업과 동시에 하사관으로 가는 제도 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리 높아만 보이는 해병대 하사관들도 육국 하사관들하고 그리 절친처럼
지내는데 그 육군 하사관들중 8명이 제 고등학교 2년 직속후배들이 있더군요.
후반기 교육 기간중에 그 녀석들 덕을 좀 봤죠.^^
주말에 외출 나갔다가 올때 통닭도 사다주고 먹거리가 떨어지질 않아 해병대 선배들과 저희들도 심심하진
않았습니다.( 그 고맙던 녀석들이 연락이 되질 않아 많이 그립습니다.^^)
훈련소 시절 부터 우리 기수가 해외 파병이 될것이다 라는 유언비어가 많이 퍼졌었는데,
시간은 흘러 년말이 다가 오고 있던 와중에 세계 정세는 전쟁 기류에 휩싸이게 됩니다.
걸프전이 터질것 처럼 위기촉발!
드디어 해가 바뀌어 1월달에 걸프전이 터졌습니다.
훈단에서 들었던 것 처럼 우리가 해병대가 파견이 된다는 말들이 솔찮게 나돌았습니다.
유서를 써 놓고서 손톱 발톱을 잘라 머리카락과 함께 노란 봉투에 밀봉을 해 놓고서 대기 상태에서
교육이 진행 되었습니다.(지금 생각하면 정신 차리라고 겁을 준 것이었던 겁니다.ㅋㅋㅋ)
교육 끝나면 실무에 배치되자 마자 쿠웨이트로 날아간다고 항상 긴장 속에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시간을 흘어 12주 교육이 끝나고 해병 1사단 공병대대를 찾아 꽃봉을 메고 버스로 타고 다시
그리 가고 싶지 않은 포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해가 짧은 겨울 저녁에 포항에 도착하여 다찌차를 타고서 사단본부에서 잠시 대기를 하던중
공병대대에서 다찌차가 오더니 납치 하듯이 아니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처럼 끌고서 데려 갔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다음에 다시 4탄으로...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길...이상 필~~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