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의 초코파이
스케이트를 처음 타는 어린 딸이 몇 발짝 못 가 넘어진다. 엄마는 따뜻한 차와 초코파이를 딸에게 건네며 위로한다. 딸은 초코파이를 먹으며 피겨 스타가 되는 미래를 그린다. 몇 년 전 러시아에서 방영된 한국산 초코파이 광고다. 1990년대 초 러시아 보따리상들이 처음 들여간 초코파이는 러시아의 대표적 어린이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현지 공장 두 곳에서 만든 초코파이가 아프가니스탄·아제르바이잔에까지 수출된다.
▶베트남에선 2006년 호찌민시에 첫 초코파이 공장이 들어선 이래 파이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조상을 잘 모시는 베트남 사람들은 집 안에 봉조당(奉祖堂)이라는 제단을 차려놓고 명절과 대소사마다 수시로 제사를 지낸다. 그 제상에 초코파이가 오른다. 특별한 음식으로 대접받는다는 뜻이다. 한국에 바나나가 처음 수입되던 시절 우리 제사상에 오른 것과 비슷하다.
▶초코파이는 개성공단 근로자 5만여명에겐 간식을 넘어 비공식 수당이자 통화(通貨)였다. 근로자들은 하루 여덟 개 받는 초코파이를 먹지 않고 장마당에 비싸게 내다 팔곤 했다. 초기에 회사마다 주는 초코파이가 3~10개로 들쭉날쭉하자 적게 받는 근로자들이 거세게 항의해 개수를 통일해야 했다. 초코파이를 돌아가며 한 사람에게 몰아줘 목돈을 만드는 계(契)도 생겨났다. 옛 구로공단 여공들이 간식 빵을 모아줘서 고향 집에 부치게 했던 '빵계'를 닮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초코파이가 북한에서 전설적 지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마시멜로로 채운 작고 둥근 파이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북한을 서서히 변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개성공단 초코파이가 북한 주민이 바깥세상에 눈뜨게 하는 '자유의 창'이라는 얘기다. 당장 개성공단이 문을 닫자 북한 돈 500원 하던 장마당 초코파이 값이 750원으로 뛰었다고 한다. 북한 사람들이 들인 초코파이 맛은 바로 시장경제의 달콤한 맛이다. 35g짜리 초코파이가 북한 체제에 묵직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