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 “국민 정서 맞지 않아 병력증원 고려 안 해”


(上)리지웨이(가운데)가 1950년 12월 미8군사령관으로 부임하기 위해 워싱턴 DC 비행장에서 브래들리 합참의장의 전송을 받고 있다. / (中)휴전이 서명된 1953년 7월 27일, 미국에서 발행된 편지봉투. 봉투 소장자가 추후에 전직 대통령 해리 트루먼과 리지웨이 장군의 서명을 봉투에 받았다. / (下)버나드 바루크.


나는 워싱턴을 방문하는 동안 백악관에서 트루먼 대통령을 만났다. 그에게 한국을 위한 병력증원이 예정돼 있는지 묻고 싶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휴전을 처음으로 제안했던 러시아 외교관 야콥 말리크 (Jacob Malik, 1906~1980, 1948~1952, 1968~1972 기간 유엔주재 소련대사 지냄)를 ‘노회(獪)한 사기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루먼은 중공군의 개입에 대응해 우리가 새로운 공세에 나서는 것은 미국 국민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국무부와 국방부에서도 나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실질적인 병력증원이 고려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유는 “미국 국민들이 결코 그것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동맹국들이 그것을 지지하지 않는다” “미국 경제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 등이었다.

나는 고위 정책결정자들이 이런 이유들을 거론하는 것을 듣고 낙담했고, 동시에 황홀한 감정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백악관과 국무부의 모든 관리 또는 국가적 책무를 수행하는 국방장관, 차관, 국장이 갑자기 내게는 신비롭게만 느껴지는 “미국 국민들이 지지하리라는 것”이라는 주제에 대한 전문가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자문(自問)해 봤다. 도대체 미국 지도부는 국민들에게 국가안보의 긴급성을 설득력 있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그들이 병력증원에 찬성토록 할 수는 없다는 말인가? 병력보강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대안을 분명하게 제시했는가?

미국 지도부는 극동에서 실패한다면 닥칠 위험을 예측이나 해 봤는가? 그들은 과거에 전쟁이 정체상태가 됨으로써 초래됐던 피비린내 나는 인명(人命)의 희생을 생각이나 해 봤는가?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체계적인 갤럽 여론조사를 믿을 수 있는가? 1948년 대통령 선거에서 갤럽은 트루먼이 아니라 공화당의 토머스 듀이 (Thomas Dewey, 1902~1971, 미국 여론조사의 허점을 얘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1943~1954 기간 뉴욕 주지사 지냄)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다고 예측하지 않았는가.

여론조사란 이렇게 국민의 맥박을 제대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인데, 군인들이나 선거로 벼락감투를 쓴 정치인들이 이런 중요한 결정의 근거로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대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리고 “미국 경제가 감당할 수 있어야 하다니!” 나는 도무지 그 산출근거를 이해하기 힘들다. 내가 경제학을 이해하는 수준은 그저 대학교육을 받은 평범한 학생 수준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기 수개월 전인 1950년 초, 브래들리 합참의장이 의회에서 보고한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미국 경제가 국방예산으로 매년 130억 달러 이상을 부담하기 힘들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그의 발언 후 1년 만에 우리경제는 600억 달러의 군사예산을 부담했다. 그 차이가 너무 크지 않은가. 1950년에는 130억 달러도 부담하기 어렵다던 미국 경제가 어떻게 1951년에는 600억 달러를 부담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아무튼 이렇게 엄청난 지출을 하고도 미국 경제는 붕괴에 직면하지 않았다.

나는 언젠가 이런 수수께끼 같은 문제를 화두로 재정전문가이자, 대통령 경제고문을 지낸 버나드 바루크(Bernard Baruch, 1870~1965)와 대담한 적이 있다. 그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경제고문을 지냈으며, 1946년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유엔핵에너지위원회 대표로 임명된 인물이다. 특히 그는 많은 보통 사람들의 다정한 친구였다.

나는 그를 만나 6·25전쟁의 비용문제를 물었다.

“제가 듣기로는 우리나라의 경제 형편이 한반도에서 우리가 승리하기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할 수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 경제가 파탄에 이르지 않고 한국에 쏟아 부을 수 있는 군사비용 규모는 도대체 얼마나 됩니까?

그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국가가 부담할 수 있다거나 없다는 이 모든 논의는 그야말로 무의미한 일입니다. 우리의 생존에 필요하다면 우리는 그 비용을 부담할 수 있고, 부담해야만 합니다. 재정 규모를 올바로 운용한다면, 우리 경제는 그에 필요한 비용을 얼마든 충당할 수 있습니다.”

바루크는 이를 뒷받침하는 많은 이유를 열거했다. 예를 들자면, 미국보다 산업잠재력이 턱도 없이 부족한 소련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수천 대의 탱크, 포, 항공기들을 매년 쏟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도 포함됐다.

바루크는 당시 소련의 철강 생산력이 연간 3500만 톤이었던 데 비해 우리 미국은 1억 톤 이상이나 됐음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총체적인 공업생산능력이 소련의 공업생산능력을 크게 앞지르고 있으므로, 미국은 시민들의 경제적인 희생을 염려하지 않고도 충분히 군사적인 생산에서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정전문가, 정치인, 금융인으로서의 자질에다가 저명한 철학자로서도 손색이 없는 버나드 바루크의 충고는 트루먼 정부에서 무시되기 일쑤였다. 바루크와 같은 군사재정분야 전문가들이 최선을 다한 판단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워싱턴 당국이 하달한 명령들은 결국 극동지역에서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에서 우리가 양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와 관련해 나는 극동군 총사령관 리지웨이(Matthew B Ridgway, 1895~1993) 장군과 인터뷰한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리지웨이는 1950년 12월 워커 미 8군사령관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자 그의 후임으로 한국에 부임했으며, 1951년 맥아더 장군이 해임되자 4성 장군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극동군총사령관이 됐다. 인터뷰는 그가 극동군총사령관이 되고 난 다음에 이뤄졌다.

나는 휴전회담에 관한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물었다.

“장군님, 휴전회담이 어떻게 진행돼 갑니까? 제가 이해하기로는 우리가 북한 내 비행장 문제에 대해 양보하라는 압력을 받는다고 합니다. 맞는 얘기입니까?”

리지웨이는 우려 섞인 어조로 답변했다.

“나는 우리가 그러한 양보를 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유는 잘 알 것입니다. 만일 공산주의자들이 북한에 제트기가 착륙할 수 있는 비행장들을 복구하고 개발한다면, 나로서는 일본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 그 말입니다!”

그는 현대 군용기의 운항속도와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일본이 북한에서 출격한 항공기들로부터 폭격을 받거나 기총소사를 받는 등 끔찍한 위험에 노출된다는 사실을 상세히 설명해 줬다.

그러나 당초 북한 내 비행장 복구와 건설에 반대했던 유엔군 측은 공산군 측에 결국 실제로 양보했다. 이로써 오늘날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북한 내 10여 개의 비행장에서 군용기를 가동시킬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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