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치는 사람마다 황참봉에게 절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어르신 행차하셨습니까?”
“음.”
서당 다녀오는 아이들도 코가 땅에 닿을 만큼 허리를 굽혀 “참봉할아버지 만수무강하십시오.” 하고 인사를 했고,
물동이를 인 아낙들도 물동이를 땅에 내려놓고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허리를 굽혔다. 불룩 나온 배를 뒤뚱거리며 저잣거리를 걸어가도 황참봉은 인사받기에 바쁘다. 황참봉은 이 고을 사람 모두가 자신을 우러러 보는 게 흡족해서 때때로 이 골목 저 거리를 돌아다닌다. 삿갓을 눌러쓰고 둑길을 걸어 집으로 가던 황참봉은 그만 발이 미끄러져 황토물이 거칠게 흐르는 개천에 빠지고 말았다. 그를 삼켰다 뱉어내기를 반복했다. 결국 그는 정신을 잃었다. 콰르르 폐에 가득 찼던 물을 쏟아내며 황참봉은 정신을 차렸다. 그를 떠내려가는 개울에서 건져내 인공호흡을 시켜 목숨을 살린 사람은 임가였다. “자네가 나를 살렸군!” 하며 몇번 긴 숨을 몰아쉬었다. 저는 고을 사람들에게 맞아 죽습니다.” 사실 온 고을 사람들이 황참봉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것은 그를 존경해서가 아니라 그를 겁냈기 때문이다.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은 소작을 박탈했다. 부모들이 소작을 빼앗기지 않게 하기 위함인가?”
심지어 황참봉의 연배들도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세차게 내리던 밤,
그는 허우적거리며 기어나오려고 했지만 폭우로 불어난 물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둑길에 누운 황참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가를 보고
“자네, 까치골 밭뙈기 다섯마지기를 부치고 있지?”
“네, 그러합니다.”
“자네는 내 생명의 은인이네. 그 밭뙈기는 물론 문전옥답 열마지기를 자네에게 주겠네.”
그 말에 기뻐서 펄쩍 뛸줄 알았던 임가가 죽을상을 짓더니 한다는 말이,
“참봉어른, 사양하겠습니다.”
황참봉이 깜짝 놀라 임가에게 물어봤다.
“참봉어른, 제가 어른을 살려주고 전답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황참봉은 벼락에 맞은 듯이 놀랐다.
그는 보릿고개에 장리쌀을 놓아 소작농들의 농토를 모두 다 빼앗았고
비 오는 그날 밤도 그는 수절하는 과부를 겁탈하고 오는 길이었다.
“서당 하굣길의 아이들이 내게 절하는 것도
황참봉은 둑길에 퍼질러 앉아 엉엉 울었다.
황참봉은 장리쌀을 놓아 뺏은 논밭을 모두 다시 돌려줬다.
진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