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4월 10일
300명 조금 넘은 대한민국의 건강한 젊은이들은 해병 훈련소로 입소하였습니다.
여기 저기 정신 없이 휘둘리며 이리왔다 저리 갔다를 반복하는 통에
어리숙한 동기들은 워커발에 까이고 빡빡 깎은 머리통위로 몽둥이 세례를 받고 있을 즈음
비슷한 몇 놈이 제 주위에 자리하였습니다.
전반기가 마쳐지고 후반기 때 처음 행정병이라고 약 열댓명이 호출되어
서로가 우리는 고생 조금 덜하겠다 서로에게 축하하며 여기 저기로 팔려가는
다른 동기들의 안위를 걱정하였습니다.
기쁨도 잠시 우리 기수에서는 행정병과가 없어졌다고 전원 90/106mm 무반동총 병과로 바뀌었다고 통보받았습니다.
그게 뭔지 실무가서 알았습니다. 남들보다 20kg은 더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는 비극을~~~
후반기 마치고 1사단에 남게 되어 팔려갈 부대 기다리고 있는데
사단 주임상사가 제게 오더니 글씨 한번 써봐라 하시는 겁니다.
사단 전입신고를 제가 했는데(당시 박구일 장군), 실수 하나도 안하고 잘 했다고
사단본부로 빼주겠다는 겁니다.. 아니 이런 횡재가…??????????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제 글씨가 조금 자유 분망하여
남들이 쉽게 알아볼 수 없다는데 있었습니다.
한참을 보더니 다른 사단본부 행정병과 눈짓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가로젓고는
안되겠구나….
그리하여 팔려간 곳이 당시 해안방어 막바지에 있던 3연대 1대대 화기중대였습니다.
오후 늦은 시각 트럭 자그마한게 하나 와서 저와 같은 행정병 받았다 106mm로 전환된 복도 없던 제 동기와 저를 싣고 산길을 꼬불꼬불
올라가니 웬 영화서 보던 것 같은 막사가 있고 범강장달이 같은 하늘 같은 고참들이 득실거리는 무슨 산적떼 소굴 같더군요.
가던 날 저녁때부터 뭔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행정병 보던 고참 하나가 오며 가며 걷어차고 때리며 밤새 인간적 모욕을 참 많이 주더군요..
이런 저런 시련도 있었고 웃음도 지으며 보낸 세월 약 2년여,
동기와 저는 힘들 때 내무실 옆 자리서 손 꼭 붙들고 참아내자.. 서로에게 의지하며 보낸 세월이었습니다.
어느덧 전역이 다가와 함께 제대하고 쉬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멀지도 않은 청주와 일산 살면서 그리도 보기가 어려웠던지 지난 주말 21년만에 부둥켜 안고 한참만에 나눈 말이 “건강하냐?” 이 한마디였습니다.
세월은 흘러 속알머리가 휜히 들여다 보이는 중년이 되었지만 젊은 시절 함께 보낸 그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술잔 기울이는 내내 머리속을 질주하였습니다.
그 녀석 보면 그냥 악수하며 웃을 줄 알았는데
끌어안고 건강하냐는 말 나누고는 서로 목이 메어 다른 말 나누지도 못했습니다.
맛있는 것 사 먹인다고 일산으로 데리고 와 사 먹여 돌려보냈는데
택시 태워 보내는 그 순간에도 왜 그리 안쓰럽던지..
이 녀석도 나름대로 소방공무원으로 그리 낮은 자리 아닌 위치에 있어 그리 걱정할 이유는 없건만
마음 나누던 벗을 되돌려 보내는 것이 영 마음 아팠나 봅니다.
안경 속으로 조금씩 맺혀지는 눈물방울 지워내느라 서로 헛 웃음 지으며
23년 전 맺어졌던 인연의 끈을 다시 한번 조여 봤습니다.
아침에 일 할 것 해 놓고 잠시 올려봤습니다.
좋은 한 주 보내십시요..
300명 조금 넘은 대한민국의 건강한 젊은이들은 해병 훈련소로 입소하였습니다.
여기 저기 정신 없이 휘둘리며 이리왔다 저리 갔다를 반복하는 통에
어리숙한 동기들은 워커발에 까이고 빡빡 깎은 머리통위로 몽둥이 세례를 받고 있을 즈음
비슷한 몇 놈이 제 주위에 자리하였습니다.
전반기가 마쳐지고 후반기 때 처음 행정병이라고 약 열댓명이 호출되어
서로가 우리는 고생 조금 덜하겠다 서로에게 축하하며 여기 저기로 팔려가는
다른 동기들의 안위를 걱정하였습니다.
기쁨도 잠시 우리 기수에서는 행정병과가 없어졌다고 전원 90/106mm 무반동총 병과로 바뀌었다고 통보받았습니다.
그게 뭔지 실무가서 알았습니다. 남들보다 20kg은 더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는 비극을~~~
후반기 마치고 1사단에 남게 되어 팔려갈 부대 기다리고 있는데
사단 주임상사가 제게 오더니 글씨 한번 써봐라 하시는 겁니다.
사단 전입신고를 제가 했는데(당시 박구일 장군), 실수 하나도 안하고 잘 했다고
사단본부로 빼주겠다는 겁니다.. 아니 이런 횡재가…??????????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제 글씨가 조금 자유 분망하여
남들이 쉽게 알아볼 수 없다는데 있었습니다.
한참을 보더니 다른 사단본부 행정병과 눈짓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가로젓고는
안되겠구나….
그리하여 팔려간 곳이 당시 해안방어 막바지에 있던 3연대 1대대 화기중대였습니다.
오후 늦은 시각 트럭 자그마한게 하나 와서 저와 같은 행정병 받았다 106mm로 전환된 복도 없던 제 동기와 저를 싣고 산길을 꼬불꼬불
올라가니 웬 영화서 보던 것 같은 막사가 있고 범강장달이 같은 하늘 같은 고참들이 득실거리는 무슨 산적떼 소굴 같더군요.
가던 날 저녁때부터 뭔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행정병 보던 고참 하나가 오며 가며 걷어차고 때리며 밤새 인간적 모욕을 참 많이 주더군요..
이런 저런 시련도 있었고 웃음도 지으며 보낸 세월 약 2년여,
동기와 저는 힘들 때 내무실 옆 자리서 손 꼭 붙들고 참아내자.. 서로에게 의지하며 보낸 세월이었습니다.
어느덧 전역이 다가와 함께 제대하고 쉬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멀지도 않은 청주와 일산 살면서 그리도 보기가 어려웠던지 지난 주말 21년만에 부둥켜 안고 한참만에 나눈 말이 “건강하냐?” 이 한마디였습니다.
세월은 흘러 속알머리가 휜히 들여다 보이는 중년이 되었지만 젊은 시절 함께 보낸 그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술잔 기울이는 내내 머리속을 질주하였습니다.
그 녀석 보면 그냥 악수하며 웃을 줄 알았는데
끌어안고 건강하냐는 말 나누고는 서로 목이 메어 다른 말 나누지도 못했습니다.
맛있는 것 사 먹인다고 일산으로 데리고 와 사 먹여 돌려보냈는데
택시 태워 보내는 그 순간에도 왜 그리 안쓰럽던지..
이 녀석도 나름대로 소방공무원으로 그리 낮은 자리 아닌 위치에 있어 그리 걱정할 이유는 없건만
마음 나누던 벗을 되돌려 보내는 것이 영 마음 아팠나 봅니다.
안경 속으로 조금씩 맺혀지는 눈물방울 지워내느라 서로 헛 웃음 지으며
23년 전 맺어졌던 인연의 끈을 다시 한번 조여 봤습니다.
아침에 일 할 것 해 놓고 잠시 올려봤습니다.
좋은 한 주 보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