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에 맞서며 바람 따라 떠나는 사람들과
그 광경을 상상하고 있는 '나'사이의 거리 따위는 잊을 수 있지만
어쩌다 아스라이 먼 바닷가의 갈매기소리가 들리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심난한 마음은 바다를 발로 차서 도시에 파도가 넘치게 하고 싶습니다.
파도에 파도를 넘어 오는 갈매기의 노래 소리는 손에 잡히지 않는 일조차
놓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출석요구서입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혹여, 세상사 귀찮다고 방콕(?)하려는 것은 아닌지요
빈주먹조차 버리고 '낯선 곳(生地)'으로 떠나십시오
전국은 지금 休暇(휴가)중입니다.
休暇를 直譯하면 "일정한 일에 매인 사람이 다른 일로 말미암아 얻는 겨를"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休暇를 破字하여 意譯해 본다면
休는 "사람(人)이 나무(木) 그늘 아래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 모습"을 상형한 것이며,
暇는 하루(日)가 모처럼 한가한 틈이 있어 쉬는 날입니다.
초월적 논리(Over Logic)로 말씀드린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너그럽고 평안하게
일상을 되돌아보는 思顧의 시간"입니다.
思顧(사고)는 "생각하면서 돌아본다"는 뜻으로 내 안에 '나'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휴가의 중요한 미션은 思顧를 통해 나를 깨우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른바 思顧而樂(사고이락)은 避暑之樂(피서지락)인 것입니다.
꿈이었을지라도 나를 잃고 사는 삶은 무의미한 것이며
아직도 내 안에서 불타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不景氣 탓에 앞이 보이지 않고 답답하십니까?
내 안에 모든 해법의 마스터키가 숨겨져 있습니다.
휴가란 결국 나를 해방시켜 마스터 Key를 찾아내는 소중한 쉼표입니다.
休暇의 본질이 쉼이라면, 쉼의 본질은 思顧而樂입니다.
물론 思顧而樂은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는 得暇(득가)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왜 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여유가 없습니다.
하루하루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기계부품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낯선 곳'에서의 휴가는 급하고 바쁜 인생길에 커브를 주기도 합니다.
休暇의 休는 止(지)라는 톡 쏘는 알싸한 맛을 隱喩(은유)로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휴가 중에는 불평도 쉬고, 미움도 멈추고,
손에 잡히지 않는 일손도 놓고, 욕심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쉼을 통해 새로운 삶의 원동력을 얻으려 한다면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물서른 '낯선 곳'으로 가야 합니다.
모든 것이 두려운 '낯선 곳'에서는 나를 비워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낯선 곳'에서 신선하고 오묘한 香氣를 맡으며
나를 찾아 궁리하면서 주먹질도 하고 박치기도 서슴치 말아야 합니다.
때론 비워낸 그 자리를 다시 채우는 삽질도 해야 합니다.
思顧而樂의 렌즈 같은 역할을 하는 休는
'용서하다' '너그럽다' '찬미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休는 넉넉하고 여유 있는 삶을 창출하는 도정공장입니다.
도정공장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얻으며 시대를 앞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깊은 묵상과 더불어 자아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휴가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休暇之道란 급변하는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과 귀를 가지는 것입니다.
得暇(무엇인가 얻는 휴가)의 源泉(원천)인 思顧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 따라 날아가서 '낯선 곳'에 安着(안착)하는 것입니다.
'낯선 곳'은 思顧의 모래밭입니다.
思顧는 자신과의 샅바싸움이며 구태한 삶을 뒤집는 한판승의 深奧(심오)한 技術입니다.
得暇(득가)는 한판승의 전리품입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물 좋고 계곡 깊은 곳이나 유명한 해변은 온통 사람들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마치 神의 뜻을 알아내려는 聖書의 인물들처럼
사람들은 '낯선 곳( a strange place)'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단 한 페이지 읽지 못한다 할지라도 책 한 권 허리춤에 꿰차고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물서른 '낯선 곳'에서 우연히 네잎클로버라도 만나면
책갈피에 끼워 행운을 고이 간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避暑를 떠날 채비를 하고 계신다면 비에 젖은 시골이 좋습니다.
서산마루에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즈음에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고향이 참 좋습니다.
연어의 回歸本能(회귀본능)이나 꿀벌의 歸巢本能(귀소본능)은 아닙니다.
오랜 타향살이로 이미 '낯선 곳'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돌아 가야할 고향으로 휴가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홀로 계신 어머니는 버선발로 樂暑(락서)길을 재촉합니다.
* 휴가에 대한 좋은 글이라 함께하고픈 생각에서 올립니다!!
정작 저도 휴가가 여의치 않지만 해골동 선,후배님들께 대리 만족을 누리고 싶습니다.
지금 떠나십시요. 대나무 낚시대라도 좋습니다. 어깨에 걸쳐메고 콧노래 흥얼거리며
다녀오세요.. 인생은 충전이 필요합니다.
그 광경을 상상하고 있는 '나'사이의 거리 따위는 잊을 수 있지만
어쩌다 아스라이 먼 바닷가의 갈매기소리가 들리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심난한 마음은 바다를 발로 차서 도시에 파도가 넘치게 하고 싶습니다.
파도에 파도를 넘어 오는 갈매기의 노래 소리는 손에 잡히지 않는 일조차
놓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출석요구서입니다.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
혹여, 세상사 귀찮다고 방콕(?)하려는 것은 아닌지요
빈주먹조차 버리고 '낯선 곳(生地)'으로 떠나십시오
전국은 지금 休暇(휴가)중입니다.
休暇를 直譯하면 "일정한 일에 매인 사람이 다른 일로 말미암아 얻는 겨를"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休暇를 破字하여 意譯해 본다면
休는 "사람(人)이 나무(木) 그늘 아래서 편안하게 쉬고 있는 모습"을 상형한 것이며,
暇는 하루(日)가 모처럼 한가한 틈이 있어 쉬는 날입니다.
초월적 논리(Over Logic)로 말씀드린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너그럽고 평안하게
일상을 되돌아보는 思顧의 시간"입니다.
思顧(사고)는 "생각하면서 돌아본다"는 뜻으로 내 안에 '나'를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휴가의 중요한 미션은 思顧를 통해 나를 깨우는 즐거움을 맛보는 것입니다.
이른바 思顧而樂(사고이락)은 避暑之樂(피서지락)인 것입니다.
꿈이었을지라도 나를 잃고 사는 삶은 무의미한 것이며
아직도 내 안에서 불타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不景氣 탓에 앞이 보이지 않고 답답하십니까?
내 안에 모든 해법의 마스터키가 숨겨져 있습니다.
휴가란 결국 나를 해방시켜 마스터 Key를 찾아내는 소중한 쉼표입니다.
休暇의 본질이 쉼이라면, 쉼의 본질은 思顧而樂입니다.
물론 思顧而樂은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는 得暇(득가)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왜 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볼 여유가 없습니다.
하루하루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기계부품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낯선 곳'에서의 휴가는 급하고 바쁜 인생길에 커브를 주기도 합니다.
休暇의 休는 止(지)라는 톡 쏘는 알싸한 맛을 隱喩(은유)로 숨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휴가 중에는 불평도 쉬고, 미움도 멈추고,
손에 잡히지 않는 일손도 놓고, 욕심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쉼을 통해 새로운 삶의 원동력을 얻으려 한다면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물서른 '낯선 곳'으로 가야 합니다.
모든 것이 두려운 '낯선 곳'에서는 나를 비워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낯선 곳'에서 신선하고 오묘한 香氣를 맡으며
나를 찾아 궁리하면서 주먹질도 하고 박치기도 서슴치 말아야 합니다.
때론 비워낸 그 자리를 다시 채우는 삽질도 해야 합니다.
思顧而樂의 렌즈 같은 역할을 하는 休는
'용서하다' '너그럽다' '찬미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休는 넉넉하고 여유 있는 삶을 창출하는 도정공장입니다.
도정공장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과 지혜를 얻으며 시대를 앞서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깊은 묵상과 더불어 자아성찰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휴가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休暇之道란 급변하는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과 귀를 가지는 것입니다.
得暇(무엇인가 얻는 휴가)의 源泉(원천)인 思顧는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 따라 날아가서 '낯선 곳'에 安着(안착)하는 것입니다.
'낯선 곳'은 思顧의 모래밭입니다.
思顧는 자신과의 샅바싸움이며 구태한 삶을 뒤집는 한판승의 深奧(심오)한 技術입니다.
得暇(득가)는 한판승의 전리품입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물 좋고 계곡 깊은 곳이나 유명한 해변은 온통 사람들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마치 神의 뜻을 알아내려는 聖書의 인물들처럼
사람들은 '낯선 곳( a strange place)'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단 한 페이지 읽지 못한다 할지라도 책 한 권 허리춤에 꿰차고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물서른 '낯선 곳'에서 우연히 네잎클로버라도 만나면
책갈피에 끼워 행운을 고이 간직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避暑를 떠날 채비를 하고 계신다면 비에 젖은 시골이 좋습니다.
서산마루에 해가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즈음에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고향이 참 좋습니다.
연어의 回歸本能(회귀본능)이나 꿀벌의 歸巢本能(귀소본능)은 아닙니다.
오랜 타향살이로 이미 '낯선 곳'이 되었지만
언젠가는 돌아 가야할 고향으로 휴가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홀로 계신 어머니는 버선발로 樂暑(락서)길을 재촉합니다.
* 휴가에 대한 좋은 글이라 함께하고픈 생각에서 올립니다!!
정작 저도 휴가가 여의치 않지만 해골동 선,후배님들께 대리 만족을 누리고 싶습니다.
지금 떠나십시요. 대나무 낚시대라도 좋습니다. 어깨에 걸쳐메고 콧노래 흥얼거리며
다녀오세요.. 인생은 충전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