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해병대영웅 한국말 '아침해' 기념관 연다
6·25 전장에서 탄약 수송 맡은 경주마, 훈장 받고 하사로 진급 라이프지 선정 세계 100대 영웅 … 이달 말 미 해병본부서 헌정식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레클리스(Reckless)’는 미군에 입대했다. 원래 이름은 ‘아침해’였지만, 미군과 함께 일하면서 영어 이름이 생겼다. 해병대 소속인 그의 임무는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 병사들에게 탄약을 공급하는 일이었다.
당시 최전방에서 전투를 치르는 많은 병사들이 레클리스가 날라다 주는 탄약으로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정작 레클리스는 하나뿐인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위험을 불사하고 탄약이나 포탄을 전달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묵묵히 맡겨진 임무를 수행했다. 때로 위험한 지역에 갈 때는 혼자서 탄약보급소와 최전선을 오가기도 했다. 동료인 미 해병대원들은 이런 그에게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의미로 ‘레클리스’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별명은 정식 이름이 됐다. 총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한 그의 공로는 틈틈이 직속부대 사단장에게도 알려졌다. 전쟁이 끝난 뒤 미 정부는 그에게 퍼플하트 훈장(전투 중 부상을 입은 미군에게 주는 훈장), 대통령 표창장, 미 국방부 종군기장, 유엔 종군기장 등을 무더기로 수여했다.
한국전의 치열한 전투 속에서 최전선에 포탄을 운반한 ‘아침해’. [사진 미 해병대] 이쯤 되면 전형적인 전쟁 영웅의 스토리다. 미 해병대 역사에서 유명한 일화를 남긴 레클리스는 6·25전쟁 영웅이 맞다. 하지만 사람이 아니다. 군마(軍馬·군에서 일하는 말)다.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대원으로 대우받으며 큰 공로를 세운 말 한 마리를 추모하는 기념관이 미국에 건립된다. 미 국방부는 한국전 정전 60주년을 맞아 26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관티코 해병대 본부 내 해병박물관에서 한국산 경주마 레클리스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 헌정식을 연다. 레클리스 기념관에는 동상도 세워지고 각종 자료가 전시된다. 미 전역에서 추모행사도 열린다.
한국전 참전용사 대접을 받는 레클리스는 미국에서 꽤 유명하다. 전쟁 직후인 1950년대 말 일간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등 미 언론에 특집기사로 등장했다. 특히 라이프 매거진은 97년 특별호에서 세계 100대 영웅에 레클리스를 선정했다. 당시 세계 100대 영웅에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 흑인 노예 해방의 주역 에이브러햄 링컨, 영화배우 존 웨인, 성녀 마더 테레사 등이 포함됐다. 그의 이름을 딴 추모 웹사이트(www.sgtreckless.com)까지 있다.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레클리스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마로 트랙을 누볐었다. 그런 그를 산악지역이 많은 한국 전장에서 탄약 공급에 어려움을 겪던 미 해병 1사단 5연대 무반동화기 소대 에릭 페더슨 중위가 당시 돈 250달러를 주고 군마로 구입했다. 그 뒤 레클리스는 53년 3월 미 해병과 중공군 120사단이 맞붙은 ‘연천전투(네바다 전투)’를 포함해 보급기지와 최전방 고지를 386회나 왕복하며 탄약 수십t 을 날랐다.
미 국방부는 장병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레클리스를 정전협정(53년 7월 27일) 이후 미국으로 데려갔다. 59년엔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군마인 레클리스를 부사관으로 진급시킨 뒤 하사에게 교부되는 근무 기장인 선행장을 수여했다. 60년 성대한 전역식을 치른 레클리스가 68년 죽자 미 해병대는 참전군인을 대하듯 엄숙하게 장례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26일 열리는 ‘레클리스 추모 기념관’ 헌정식에도 미 해병대의 고위 장성들이 대부분 참석한다고 미 국방부 측은 밝혔다. 군악대와 의장대까지 총출동한 가운데 헌정식이 엄수될 예정이다.
워싱턴 지사=박성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