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적인 해병이야기 · “뒤로 전진하다”
“해병은 후퇴란 없다 … 단지 벗어나는 것이다”



미국 해병대원들이 흥남부두로 가는 고단한 철수길에 잠시 쉬고 있다.
[출처: War In Korea]


1950년 12월 4일, 북경라디오 방송은 확신에 찬 어조로 방송했다. “미 해병대 제1사단의 전멸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중공이 이렇게 자만심을 가질 만한 이유가 있었다. 중공군의 대반격이 시작될 때 미 해병대원들은 한반도 북동부지역 장진호 근처의 얼어붙은 황무지에 중공군에 의해 포위돼 있었다. 미군과 중공군의 병력 수는 6대1로 중공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12월 5일, 나는 하갈우리의 눈 덮인 들판에 서 있었다. 세찬 눈발이 10여 명의 해병대 장교의 추위에 언 얼굴을 모질게 때리고 있었다. 그들은 영하 20도가 넘는 혹한 속에 서서 미 해병대 제5연대장 머레이 중령의 훈시를 듣고 있었다. “새벽에 우리는 이곳에서 뒤로 전진한다. 우리는 낙오병이 아니라 해병으로서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다. 부상병, 장비와 함께 철수할 것이다. 우리는 절대 패잔병으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다.”

장교들은 병사를 인솔해 5일간 전투를 벌이며, 공산군에게 포위된 얼어붙은 땅 유담리에서 그곳 하갈우리까지 빠져나오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그들의 체념한 분위기를 파악한 머레이 중령은 엄하게 다그쳤다.

“우리에게 후퇴란 없다. 이는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이다. 우리의 앞쪽보다는 우리가 향할 바다 쪽에 더 많은 중공군이 진로를 막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이곳을 벗어날 것이다. 이의를 다는 자는 불구를 만들어서라도 후송시킬 것이다. 누구든 그렇게 되지 않기 바란다.”

이날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11월 24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해병 제5연대는 눈 쌓인 산길을 넘어 장진호 북쪽의 유담리를 점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촌락이라고 해야 곧 무너질 것 같은 오두막 판잣집들이 늘어선 지역으로, 인간과 소들이 오두막들을 아주 공평하게 나누어 쓰고 있는 곳이었다. 해병 제7연대는 당시 유담리의 남동쪽의 하갈우리에 주둔하고 있었으나, 해병 제5연대를 뒤따르라는 지시를 받고 유담리로 향했다.

미군은 적이 이곳에 1개 사단 정도의 병력만 주둔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우리의 공격으로 항복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함정이었다. 미 해병대가 장진호 전투에서 함정에 빠진 것은 잘못된 용병술 때문이라는 설이 우세하다. 미 해병대가 역사상 처음으로 육군 제10군단의 일부로 편입됨으로써 불상사가 빚어졌다는 것이다.

아무튼 11월 26일, 해병 제5연대는 유담리를 점령하고, 다음날 서쪽으로 공격을 시작했다. 그 사이 중공군은 해병 선봉부대들의 뒤로 잠입했다. 적들은 유담리와 하갈우리, 그리고 하갈우리와 고토리 간의 도로를 차단했다. 해병들은 사방으로 중공군의 바다에 갇히게 됐다.

11월 28일 이른 아침,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적게는 6개 사단, 많게는 8개 사단의 중공군이 미 해병대를 향해 몰려들었다. 보급로가 이미 끊긴 채 유담리에 갇혀 있던 해병 제5연대와 제7연대는 비행기로 군수품을 공급받으며 하갈우리로 철수해야만 했다.

테로스 중위가 이때의 전투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당신이 기사화할 사람은 헐 대위 같은 인물입니다. 그는 끔찍한 전투에서 두 차례나 총상을 입은 채 얼어붙은 적들의 시체를 밟고 싸우면서 중대원들을 이끌고 협곡을 빠져 나왔습니다. 나는 그를 통해 전우애가 형제애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습니다. 나는 그의 성만 알고, 이름은 모르지만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12월 3일과 4일, 미 해병대는 유담리 계곡에서 벗어나 하갈우리에 도착했다. 내가 하갈우리에 도착한 것은 해병들의 마지막 대열이 그곳에 발을 들여놓을 때였다. 12월 5일, 하갈우리에서 부상병과 동상에 걸린 환자 4500명이 비행기로 후송됐다. 그러나 걸을 수 있는 해병들은 피로에 지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하갈우리에서 고토리까리 8마일의 거리를 전투를 벌이며 행군해야했다.

한편 철수과정에서 나는 북한 사람들이 피란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 이들은 미 해병의 뒤를 따랐으며, 눈 쌓인 들판에서 웅크리고 앉아 모진 추위를 견뎌냈다. 우리는 북한에 진격해 그들이 사는 마을을 파괴했고,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러나 수많은 북한 사람이 고향을 등지고 우리를 따랐다.

12월 7일, 여전히 강추위가 계속됐으나 질풍은 잦아들었다. 우리는 고토리에서 안전이 확보되는 곳인 진흥리까지 10마일의 거리를 다시 행군해야만 했다. 그런데 이날, 우리가 지나가야 할 산길 위의 교량이 폭파돼 조립교가 건설되기까지 행군이 중단됐다. 이곳에서 사망자들을 항공기로 철수시키기에는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그래서 언 땅에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려 3개의 대형 무덤을 만들고, 시신을 수백 구씩 묻었다.

군목이 얼마 안 되는 청중들 앞에서 ‘주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시편을 낭송했다. 청중은 거의 없었으나, 그의 낭송은 바람을 타고 멀리 퍼져 나갔다. 12월 9일, 드디어 교량이 가설되고, 행군이 다시 시작됐다. 대부분의 해병들은 지치고 감각이 거의 마비돼 심지어는 간헐적인 기관총과 소총사격은 피하려 하지도 않았다. 누군가 사살돼도 그들은 지겨운 듯 아무렇지도 않게 번쩍 들어서 가까이 있는 트럭에 던져 넣었다.

라이프 잡지의 사진사 던컨은 퇴각하던 날, 크리스마스 특집을 염두에 두고 아침식사를 위해 얼어붙은 통조림을 칼로 자르고 있는 해병에게 물었다. “내가 전능한 신이어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다면, 무엇을 갖기를 희망합니까?” “제게 내일을 주시오” 해병의 답변은 간명했다.

약 2만5000명의 해병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일’을 받게 됐다. 일요일인 12월 10일 새벽 2시, 해병들은 질서정연하게 함흥에 도착했다. 12월 5일, 머레이 중령이 하갈우리에서 그 추운 날 아침에 비장한 각오로 훈시했던 대로 장비, 부상자들, 오는 길에 죽은 동료들과 함께 왔다.

그들이 흥남부두에서 수송함에 승선했을 때, 그렇게 처절한 전투를 벌였던 곳들(유담리·하갈우리·고토리·진흥리)은 이미 중공군의 수중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미 해병대의 명성이 훼손되지는 않았다. 전투병으로서의 해병대의 ‘확고한’ 명성은 충분히 지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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