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각오하고 지켜라
· 빗발치는 총알 뚫고 대구방어선 사수



1950년 11월 23일 가평ㆍ춘천지구전투에 참가한 국군5사단 장병들이
전방으로 이동하고 있다.[국방일보 DB]


맥아더 장군이 한국에서 여성 종군기자들에 대한 취재금지를 철회한 후
7월 중순 전선으로 되돌아간 나는 처음으로 미 제8군사령관 워커 중장을 만났다. 그는 불독같이 짜리몽탕한 체격의 도전적인 인물이며, 더러운 것을 못 보는 인물이었다. 그에 관한 얘기가 나올 때면, 나는 미 해병대 소위 두 명이 미 제8군사령부 내로 들어가려다가 타고 온 차량이 더럽다고 쫓겨나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러나 워커 장군은 매우 정확하고 솔직했다. 그는 전선이 여성에게 적합한
장소가 아니라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으나, 명령은 명령이므로 이제부터
내가 남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여성인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나는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오. 미국 국민들이 나를 용서치 않을 것이니, 제발 죽거나 포로가 되지 마시오.”
그는 약속을 지켰고, 그때 이후 나는 미 육군에 관한 한 더 이상의 장애 없이
남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부대가 대규모로 증원됐으나 후퇴는 여전히 계속됐다.
우리는 대구 주변을 크게 반원을 그리며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워커 장군의 “죽음을 각오하고 지켜라” 라는 유명한 사수명령이 하달된 것이
바로 이때였다. 워커 장군은 그의 특기인 대규모 정면대결작전을 개시했다. 병력이 부족하고 예비 병력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낙동강 하구에서부터 남쪽 해안의 마산까지를 큰 반원형으로 방어하도록 지정학적으로 묘하게 군을 배치했다.

나는 사수명령이 하달된 후, 마침 제25사단이 최초의 전투를 하는 남서부
전선에 때맞춰 도착했다. 마산에서 나는 지프를 빌려 해질 무렵 아름다운
산들을 넘어 진동리로 갔다. 학교 건물에 제27연대 임시본부가 설치돼 있었다.
나는 마이캘리스 연대장(1969~72년 주한 미 제8군사령관 지냄)을 만났다.
그는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정직한 인간이었다. 이날 밤 그는 다소 긴장하고 있었다. 마이캘리스는 자신이 진동리에 있다는 사실은 엄밀히 말하면 명령에
위배되는 것이고, 더구나 체크 중령 대대를 적지로 보내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되게 한 것도 실수였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다행히 체크 중령 대대의 탱크들은 적의 대전차포 공격을 받았으나, 부서진 탱크들을 응급 처리해 적의 포위망을
뚫고 새벽 1시에 무사히 진동리로 복귀했다.

학교 건물 안팎에는 연대 내 모든 장병이 모여 있어 왁자지껄했다. 마이캘리스는 전투 지휘소를 전진 배치하려다가 너무 늦고, 장병들이 지쳐 있어 이전을 연기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얼마나 운 좋게 또다시 위기를 모면했는지를 알게 됐다. 장교들과 교실에서 아침식사를 마칠 때쯤 폭음과 함께 사방에서 총알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밤새 적들이 산길을 따라 잠입해 우리를 포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교실바닥에 납작 엎드려 코로 바닥 먼지를 문질러 닦아내면서, 어떻게
사살되지 않고 벗어나느냐 하는 생각뿐이었다. 마분지 같이 얇은 벽을 관통한
총알들이 우리 주변의 마룻바닥을 찢어 놓았는데도 아무도 총에 맞지 않은 것이 신기했다. 장교 하나가 갑자기 창문으로 다이빙하듯 돌진하더니, 운동장으로
뛰쳐나갔다. 모두가 그를 따라 뛰어나가 최소한 고지대에서의 빗발치는 사격을 피할 수 있는 돌담을 발견했다.

운동장에서는 장교들과 부사관들이 밀려오는 총알을 피하며 병사들을 찾았다.
마이캘리스 연대장과 지휘관들은 지프와 트럭 밑에 숨은 병사들을 구둣발로
차면서, “어서 빨리 언덕 위의 소속 부대로 복귀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새로운 적의 부대가 공격을 위해 북쪽 협곡에 집결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또 다른 장교는 수백 명의 북한군이 1000야드쯤 떨어진 해안에 상륙했다는
우울한 정보를 갖고 왔다.

이때 나는 전쟁 중에 처음으로 도무지 탈출할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는 두려운
경험을 했다. 이가 딱딱 맞부딪치고 양손이 떨렸다. 이럴 때 흔히 인간에게 나타나는 반응을 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확신이 점차 커지면서, 마음이 단단해지고
비교적 차분한 느낌이 자리를 잡아갔다. 마이캘리스 대령은 총알이 날아오는데도 아랑곳 않고 차를 몰고 운동장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는 사격을 중지하라고 외쳤다.

“조직을 정비하자. 우리가 누구를 향해 사격하고 있는지 알아보자.”
점차 운동장의 불안하던 무질서가 저항의 양상으로 굳어져 갔고, 적에 대한
반격을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정보장교가 해변에 상륙한 장병들이 새로운 적군이 아니라 한국의 동맹군들이라고 보고했다. 이때 시계가 7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45분간 적의 공격으로 그렇게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교전이 느슨해지자 장병들은 부상병들을 등에 업고 응급치료소로 나르기 시작
했다. 나는 거기서 약 한 시간 동안 혈장을 투여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 도왔다.
이곳에서 가장 생생한 추억은 다리에 부상을 입고 절뚝거리며 치료소로 들어왔던 웨스턴 대위다. 응급치료를 받은 그는 다시 언덕으로 향했다가 30분 후 어깨와 가슴에 총상을 입고 돌아왔다.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치료소 바닥에 앉은 그는 조용히 말했다.

“진통제 주사 좀 놓아주세요. 어깨와 가슴의 상처에 통증이 심해지네요.”
오후 1시 반, 적의 마지막 공격을 격퇴하고 난 후 학교 뒤 언덕에는 적의 시체 600구 이상이 흩어져 있었다.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 우리가 생명을 구한 것은 전투지휘소 이전을 연기하고, 체크 중령 대대에 학교에 잠자리를 마련해준
덕분이었다. 추가병력 1000명이 없었다면 적군은 게릴라 전술을 구사해 우리를 쉽게 살육할 수도 있었다. 마이캘리스는 이 전투의 승리로 대령으로 진급했고,
체크 중령은 ‘탁월한 무공’을 인정받아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진동리 전투가 끝났을 때, 나는 마이캘리스에게 사단장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결하고 명쾌했다. “전해주세요. 우리는 악착같이 방어할 것이라고.” 대구 주변 지역에서의 무수한 전투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지켜라”라는 사수명령은 지켜졌다. 적의 엄청난 공격에도 대구방어선을 지킬 수 있었기에 전설적인 인천상륙작전이 가능했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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