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19 10:46

하긴스의 6.25 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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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히긴스 · 性에 구애받지 않는 훌륭한 기자


미군 병사가 군의관의 도움으로 부상병을 내려 놓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이 병사는 전선에서 대전 인근까지 2000야드를 이 부상병을 업고 왔다. [출처: War In Korea]


대전에서 전투가 한창일 때 나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에서 즉시 벗어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내 기사가
미군 당국의 비위를 거스른 것쯤으로 생각했다. 나는 기자로서 절실히 믿고 있는 것이 있다. 즉, 우리 정부가 깨어 있고 공정한 여론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면,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면, 우리 기자들이 심하게 ‘상처를 주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념하에 나는 6·25전쟁에서 미군과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나 추방은 내가 쓴 기사들과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워커 미 제8군사령관의 명령으로 쫓겨날 처지에 놓였던 것이었다. 이유는
“전선에 여성 편의시설(화장실)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벌써 3주간을
미군들과 지내면서 최악의 상황을 견뎌냈고, 여성용 화장실을 걱정하지 않았다. 한국에는 나무 덤불이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부당한 조치라고
생각하고 맥아더 장군에게 직접 호소했다.

명령이 전달된 날 오후 어느 소령이 대전을 출발하는 기차에 나를 태우려 했으나 나는 불응했다. 딘 장군도 내 결정을 지지해 줬다. 여러 주 동안 전쟁 취재를
허용하다가 갑자기 ‘강제추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나의
어려운 상황에 관한 소문은 금세 퍼져 나갔다. 지휘관들에서부터 이등병들까지 많은 병사가 내게 와서 위로해 줬다. 전쟁에는 참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포탄이든 기관총 공격이든 간에 개의치 않고 위기를 상호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특수한 연대감이다.

우리 일상생활에는 많은 가식이 있으며, 가식들이 교묘히 감춰질 수 있다. 그러나 포탄이 날아들 때는 가식을 부릴 시간이 충분치 않으며, 한 사람의 인물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당신이 본 것만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감정은 전우들, 항해사들, 조종사들, 종군기자들을 인간적으로 가깝게
만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같은 일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이들을 격리시켜 놓는다.

7월 16일, 나는 전선에서의 마지막 기사를 쓰고 대구로 가서 워커 사령관을 만나 담판을 지을 작정이었다. 이날 오후 늦게 나는 지프를 몰고 사단 사령부를 둘러
싸고 있는 구역을 별생각 없이 통과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내게 돌아오라는
고함소리가 울렸다. 나는 사령부 건물로 가서 소요의 이유를 알고자 했다.
여러 명의 사령부 장병은 책상 밑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밖을 보니
딘 장군이 나무판자로 된 울타리에 기대 있는 것이 보였다.

딘 장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누군지 서툰 사수구먼. 운이 좋았어, 하마터면 죽을 뻔 했네.”
아군 병사 몇 명의 오판으로 아군 간에 사격전이 벌어진 것이었다.

날이 어두워질 때쯤 나는 다른 종군기자 한 명과 함께 지프로 영내를 빠져나왔다. 우리는 도심을 가로질러 남쪽을 향해 텅 빈 거리를 달려 자정이 돼서야 대구의
미 육군 제21연대 본부에 도착했다. 벌써 막사의 마룻바닥에 벌렁 누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장병들로 가득 차 있었다. 모두 옷을 입은 채 자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어느 장교는 내가 자기 옆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상당한 볼거리를 연출했다. 그는 연대장 막사로 뛰어 들어
가면서 탄성을 질렀다. “어이구, 연대장님, 우리가 밤새 여자와 함께 자고 있었던 것 아세요?” 전번 전투에서 극심한 타격을 입은 미 육군 제21연대 장병들은
부지런히 참호를 파고 있었다. 장병들은 금강 북쪽에서보다 훨씬 침착해 보였다. 그들은 심지어 익살스러운 농담까지 했다.

그날 밤 나는 ‘병원열차’에 몸을 싣고 대구로 출발했다. 기차 객실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고 불결했다. 기차 안에는 들것에 실린 환자들과 걷는 부상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은 말도 없고, 표정도 없었다. 그 많은 부상자를 위한 위생병은 단 한 명뿐이었다. 맞은편의 어린 병사에게 말을 걸고 싶었으나, 그의 고통 어린 얼굴이 너무도 안쓰러워 말을 붙이기가 망설여졌다. 마침내 나는 말을 걸었다.
“물 좀 가져다줄까요?” 18세쯤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그는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바라는 게 있다면, 국민들에게 우리가 벌지 전투와 같은 가망
없는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겁니다.” 그때 복도 건너편의
다리가 절단된 하사가 끼어들었다. “야, 제발 그런 볼멘소리 좀 그만둬. 어쨌든 우리가 벌지 전투에서 결국 이겼잖아?” 두 병사는 그날 밤 숨졌다. 나는 그들이 죽은 사실을 대구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부산으로 가는 기차는 그곳에서 잠시
정차했었고, 이 두 병사의 시신이 실려 나왔다.

미 제8군에 도착했을 때 젊은 공보담당 대위가 딱딱하게 말했다.
“당신은 아무도 못 만납니다. 비행장으로 가야 합니다.” 나는 꼼짝없이 도쿄로
추방됐다. 그런데 도쿄에 도착했을 때, 맥아더 장군이 12시간 전에 추방명령을 철회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위가 나를 짐짝같이 다뤄 공항으로 쫓아 버린 시간과 거의 일치했다.

나는 많은 질문을 받고 있다. 여성으로서 직업상, 특히 전쟁에서 받는 이익과 불이익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내 생각에 가장 큰 불이익은 모든 종류의 기삿거리가 된다는 점이다. 기자들 간의 경쟁이 심한 일간지의 세계에서 여기자가 경쟁에 뛰어들었다면, 남성 동료는 여기자가 매력적인 미소 때문에 특정 기사를 얻었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여기자가 지프를 타고 길 위의 행렬 옆을 스쳐 지나가면,
병사들이 휘파람을 불거나 괴성을 지른다. 그러나 포탄이 터지고 사격이 시작되면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은 싸움에 몰두하고 총알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다. 누구도 내게 그의 참호로 들어오라고 제안한 적이 없다.

최근 나는 어느 지방신문 사장으로부터 그 신문이 나에 관해 보도한 사설을
받았다. “히긴스는 남성들이 싸우고 있는 전쟁터에서 여성이라는 프리미엄으로 명성을 얻으려하지 않는다. 그녀의 야심은 성(性)에 구애받지 않고 훌륭한 기자로 인정받는 것이다. 우리 신문 자료실 내 그녀의 기사철 봉투에는 ‘마거리트
히긴스 - 기자(Newsman)’로 표기해 놓았다. 우리는 히긴스 양이 이를 좋아할 것으로 믿는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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