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16 10:01

하긴스의 6.25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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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초기 나날들
· 북한군의 잔인한 독약'을 맛보다



전쟁의 참상을 피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선 한국인 가정.
[출처: War In Korea]

 



전쟁은 불과 열흘이 경과했는데, 우리는 벌써 네 번씩이나 후퇴했다.
우리가 대전의 미 제24사단 사령부에 도착했을 때, 윌리엄 딘 소장은 사령관직을 인수받고 있었다. 이날 작전장교는 열흘만 더 있으면, 반격에 들어갈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러나 이후 며칠간 악몽 같은 사태가 사령부를 정신차리게 만들었다.

절망상태라는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부랴부랴 증원부대를 긁어모아 한국에 급파했다. 우선 일본 주둔 미 점령군이 한반도로 이동했다. 이로써 일본은 미군의
점령상태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미국은 본토 병력이 바닥날 정도로 가능한 모든 병력을 한국에 파병하는 숙명적인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이미 한반도에 투입된 미군은 증원 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적을 막아야 하는 가망 없는 싸움을 벌였다. 지연작전이란 생명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시간을 버는 작전이었다. 지연작전은 낯설고, 먼 이국땅(천안·전의·조치원·금강·대전·영동)에서 우리가 당한 패배를 지칭하는 군사용어이기도 했다.

첫 번째 지연작전이 시행된 천안에서 적은 우리를 죽음의 함정에 빠뜨렸다.
대전으로 후퇴했던 미군은 너무 빨리 후퇴했다고 판단하고 적에게 넘겨준 지역을 되찾기 위해 천안지역으로 갔다. 종군기자들도 함께 출발했다.

정찰대는 시거스 소령이 이끌었다. 키가 크고 미끈한 외모를 가진 그는 영국의
화살표 와이셔츠 광고에 나오는 수준의 미남 장교였다. “어머니의 간청으로
공군에서 육군으로 전직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나는 어린애에 불과해요.
어머니께서는 제2차 세계대전 시 나를 끔찍이도 걱정하셨나 봐요.”

소령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얼굴을 찡그리며 한마디 더했다.
“그래서 지금은 정찰대를 지휘하고 있지요.” 몇 마일을 진군했을 때 우리 앞에서 참호를 파고 있는 북한군을 발견했다. 그들은 우리를 보자 허겁지겁 달아났다.
이때 우리 특파원들은 기사송고 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대전의 사령부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천안에서 교전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듣고 다시 천안으로
서둘러 가 보니 시거스 소령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천안전투에서 제34 연대장이 두 번 바뀌었다.
연대장 러브리스는 명령 없이 후퇴해 해임됐고, 또 다른 연대장 마틴 대령은
15야드 거리에서 바주카포로 적의 탱크를 공격하다가 전사했다. 천안전투는
끝없이 이어진 일련의 후퇴를 예고하는 전주곡과 같았다. 이후 나는 전쟁이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을 미쳐 날뛰는 인간으로 변모시켜 놓는 것을 보았고, 희망이
없는 싸움에 빠져들었다고 정부를 저주하며 무기를 버리는 것도 보았다.

반면에 나는 그들과는 다른 젊은이들도 보았다. 이들은 진지를 구하기 위해서,
동료를 돕기 위해서, 또는 보다 단순히 말해서 위대한 국가의 시민으로서 잘 싸워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서 믿을 수 없을 만큼 용감한 행위를 몸으로 실천했다.
패배를 계속하던 몇 주 동안 미군의 사기는 꽤 낮았으며,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람이면 누구든 제대로 싸울 기회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상황이 너무 나빴다. 이 때문에 당시 다음과 같은 촌평들을 듣는 일이 다반사였다.

“나는 마마보이지 영웅이 될 만한 그릇이 못 된다.” “늙은 해리(트루먼 대통령)가 주는 훈장 따위는 필요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나 달아주라고 그래.”

병사들에게 지연작전이 최선의 방안이며, 절실히 필요한 시간을 벌게 해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설득시키기 어려웠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싸움에서 동료들이 무참히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다면, 이러한 주장들은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명령에 따라 ‘기필코’ 지연작전을 완수하고,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25세의 제임스 소위는 피로와 노여움으로 입술을 떨며 말했다.

“당신이 본국의 국민들에게 진실을 얘기해주는 종군기자입니까?
25명의 소대원 중 고작 3명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나요?
우리가 병력과 무기도 없이 싸우고 있으며, 이것이 전혀 쓸모 없는 전쟁이란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겁니까?” 그러나
많은 미군 장교는 솔선수범하며 병사들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고 지연작전을 수행해냈다. 하나의 예가 미 제21 보병연대장 스티븐스 대령이다. 그는 진지를 지키는 초기전투 하나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공을 인정받아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전쟁 개시 후 일본에서 점령군으로서의 안이한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차출돼
전선으로 뛰어들게 된 젊은 병사들이 보여준 배신행위와 허겁지겁하는 행위를
경험하고 나는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미국인들은 전쟁과 전쟁 사이의
기간에 안락한 생활을 추구하고 있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 그러나 미국은 어떻게든 병사들에게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달콤한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러운 전쟁터에서 싸워야 할 분명한 대의명분이 있다는 점을 설득시켜야만 한다.

8월 말 이후 전선에서 미군 병사들의 태도가 변했다. 이들은 흉측한 적들과
싸우고 있으며, 가능한 한 조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격퇴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잔혹하게 살해된 동료들의 시체를 목격, 허위로 선전하는 북한의 라디오방송 청취 등으로 이런 변화가 초래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이러한 변화를 보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전쟁 초기에 북한 공산군은 세 가지 중요한 이점을 갖고 있었다.

첫째, 적은 병력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었다. 북한군은 병력 수에 있어서
10대1, 20대1, 심지어는 30대1의 비율로 유리한 상황에서 미군과 싸웠다.

둘째, 공산군은 탱크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미군은 개전 3주 후 로켓발사장치가 도입될 때까지 적의 탱크를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없었다. 당초 우리 정보 당국은 북한군 탱크 수를 65대 정도로 추정했는데, 실제로는 초기단계의 전투에만
400대 이상이 됐다.

셋째, 공산주의자들은 혼동의 이점을 갖고 있었다. 혼동은 미군이 친구인 한국군과 적인 북한군을 구분하기 어려운 데서 야기됐다. 적들은 이를 최대한 이용했다. 핵심 교통요지인 대전 사수를 위한 전투는 초기 지연작전 중 가장 중요했지만,
그만큼 희생도 컸다. 우리는 대전전투에서 북한군의 잔인성이라는 독약의 맛을 충분히 경험했다.

 

다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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