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15 10:22

하긴스의 6.25 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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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리 군이 이렇게 빨리 후퇴할 수 있어 · 새벽녘 깨어보니 한 명의 미군도 없이…


한바탕 전투가 치러진 후 한 미군이 부상당한 동료 전우에게 링거를 맞혀
주고 있다. [출처: War In Korea]


나는 바닥 위에 보잘것없는 담요 한 장을 깔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은밀한 방안의 동요가 내 가슴을 쿵쿵 때렸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사진기자 마이던스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빨리 작전상황실로 갑시다. 급히 후퇴해야 할 모양입니다.” 시계에 플래시를
비춰보았다. 새벽 1시였다. 나는 그에게 응답했다. “또다시 후퇴할 시간이군요. 공교롭게도 서울과 수원을 떠났던 시간과 똑같네요.”

우리는 긴장 속에 침묵이 흐르는 상황실로 조용히 들어갔다.
상황실 중앙에는 바쓰 장군과 대대장 아이레스 중령이 앉아 있었다. 바로
12시간 전까지도 두 사람에게서 볼 수 있었던 확신감이 이제는 깊은 근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 앞에 놓인 책상 위에서 타고 있는 등유 램프가 두 사람의
심각한 얼굴을 두드러지게 비췄다. 다수의 장교들이 미친듯이 야전용 전화기를 돌려댔고, 이 광경이 애처로운 불빛 속에서 낯선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잠시 후 전투에서 후퇴한 페리 중령이 나타났다. 그는 걷는 데 어려움이 있는 듯했다. 다리에 파편을 맞았던 것이다. 그의 음성에서 극도의 피로와 처절한 불행이 혼재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장군님.” 중령의 보고는 간단했다.
“우리는 적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방에서 진격해 왔고, 우리는 탄약이 다 떨어질 때까지 사격했습니다.”

나는 바쓰 장군의 눈빛을 통해 그가 잠시 한숨을 돌리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는 감정을 자제하려고 애써 노력하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을
이었다.

“귀관과 스미스 중령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상황은 얼마나 심각한가?” “심각합니다, 장군님. 많은 병사를 잃었습니다.”
“부상자들은?”
“들것에 실린 부상자들은 포기했습니다.” 장군은 움찔하면서,
매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처음부터 간략히 들어보도록 하자.” 

페리 중령은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저희는 오산 북쪽의 간선도로 양쪽 산등성이에 참호를 팠습니다. 우리는
75㎜ 무반동총 몇정, 약간의 박격포, 그리고 또 다른 화기로 무장했습니다.
아침 8시 반쯤 적의 탱크들이 굴러오기 시작했습니다. 사격을 개시해 4대 아니면 5대를 명중시켰으나, 적의 탱크들은 아측 진지 바로 옆까지 굴러왔습니다.
바주카 포병들은 도로로 내려가서 사격했으나, 적의 탱크 부대에 타격을 주지 못했습니다. 얼마 안 있어 탱크들은 우리 후미로 돌아와 뒤쪽에서 우리 진지를 향해 사격을 가해 왔습니다. 동시에 기관총과 소총으로 무장한 적의 보병부대가 몰려왔습니다. 포위된 상황에서 우리는 방어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오후 3시쯤에는 병력·식량·탄약이 모두 고갈돼 모든 중화기를 버려 두고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미스 중령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가 장병들을 지휘해 언덕을 넘어갈 때였습니다.”

페리 중령의 경험담과 우리의 지연작전 수행과정을 종합해보면,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전술을 알 수 있다. 중공군도 진격해 올 때 똑같은 전투절차를 따랐다. 적은 전면공격을 피하고, 그들의 큰 이점인 많은 병력을 중점적으로 활용하는 데 뒀다. 즉, 일련의 침투와 포위작전에 의존했다. 물론 전쟁이 전개
되면서 그들은 몇 가지 새로운 전술들을 개발했다. 우리 장비들을 약탈하자
미 군복으로 위장하고, 영어를 사용해 아군을 교란시켰으며, 우리의 동맹국인
한국군 행세도 했다. 그러나 기본 패턴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페리 중령이 설명을 마치자, 바쓰 장군의 첫 마디는 의외였다.
“맙소사, 교량들에 설치됐던 다이너마이트를 해체하다니.”
바쓰 장군은 스미스 중령이 전선을 지킬 능력이 있다고 확신했었기 때문에
한국군이 적의 탱크 공격에 대비해 다리를 폭파하려고 설치해 뒀던 폭발물들을 제거해 버린 것 같았다. 이제 정원의 반밖에 채워지지 않은 취약한 대대병력이
곧 적의 공격을 받을 차례였다. 그런데 적은 공격하지 않았다.

왜 적들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았을까 의아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 북한군은 잘 무장된 6개 사단병력으로 우리의 기세를 꺾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때 부산까지 계속 밀어붙이지 않았을까? 이는 6·25전쟁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만약 그들이 강하게 밀어붙였다면,
우리의 방어벽은 무너졌을 것이다. 맥아더 장군은 공산주의자들이 개전 초기
몇 주 동안 머뭇거린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실수라고 믿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과소평가한 것만큼, 그들은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최후의 결전에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남아서 전투를 지켜보려고 했으나 바쓰 준장의 권유로 성환으로 갔다. 언제나 그렇듯 전투지휘소는 학교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연대 장교들은 몸을 굽혀 지도를 보고, 전화를 돌리면서
극도로 흥분해 전선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새벽 3시가 됐다. 흥분이 가라앉고, 피곤이 다시 엄습해 왔다. 전쟁에 끼어들어
알게 된 인체구조에 대한 지식이 있다.

나는 사람이 잠을 자지 않고 그렇게까지 오래 견딜 수 있는지 예전엔 정말
몰랐었다. 나중에 병사들과 해병대원들이 잠을 자지 않고 밤낮으로 행군하고
전투하는 것을 보고는, 종군기자들이 참아내야 하는 피곤의 정량은 그들에
비하면 얼마나 미미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

나는 방구석에 놓인 흔들거리는 테이블 위에 몸을 쭉 뻗고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5시 반쯤 깨어나 보니(너무 조용하고 벼룩 떼들의 공격이 심했기 때문에
잠이 깬 것으로 생각됨) 방에는 단 한 명의 미군도 보이지 않았다. 지도들, 총기들, 마루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던 통조림 식량을 담은 사각형의 대형 박스들도 사라져 버렸다.

마이던스 기자는 팔꿈치에 머리를 괴고, 아직 잠이 덜 깬 흐릿한 눈으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방의 이곳저곳을 훑어보면서 말했다. “아니 이런 빌어먹을 일이
있어, 우리를 놓고 연대병력 모두가 달아나 버렸잖아. 어떻게 우리 군이 이렇게 빨리 후퇴할 수가 있어?” 우리는 어떤 새로운 재앙이 갑작스러운 이동을 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해하면서 차를 얻어 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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