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에서의 몇 시간!!

경남 진주시 상평동 / 이석민

1983년 겨울 대학을 사관학교로 가고 싶어서 시험을 쳤지만 막상 떨어지고 보니 부모님 볼 면목도 없고 나 자신이 너무도 한심해서 자살이라는 단어도 생각해봤지만, 이렇게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에 우선 군대부터 다녀와서 새로운 각오로 인생설계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시험에 떨어진 친구와 함께 용감한 해병이 되기 위해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동반입대라고 해서 같이 훈련소생활도 하고 같은 부대로 배치시켜줄텐데 그 시절에는 필요한 인원만큼 끊기 때문에 하필이면 친구와 내가 끊어져서 친구는 한 기수 선임이 됐고 나는 보름 후 입대하여 한 기수 후임이 되어버렸습니다.

병과를 나누기위해 사회에서 자격증이나 특기사항이 있으면 적어내라고 해서 저는 아무 생각 없이 ‘OO자동차학원 8개월 수료’ 라고 특기사항을 적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적고 그냥 비워두기도 그렇고. 그 당시 우리집 근처에 자동차학원이 있었는데 매일 드나들면서 운전 연습하는 것을 많이 봤다고 무작정 그렇게 적어 넣었습니다. 운전은 한번도 해보지 않았고 운전석에도 한번 앉아보지 않았는데 ‘OO자동차학원 8개월 수료’ 라는 말만 듣고 친구는 보병, 나는 수송병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우리 동기기수에는 수송병이 인원이 부족한관계로 사회경험이 있는 제가 1순위로 뽑힌 거였습니다.

11주 후반기교육을 마치고 저는 백령도로 발령을 받아갔습니다. 경상도 진주 촌놈이 백령도가 어디에 붙어있는 섬 인줄도 잘 몰랐고 내륙지방에만 있다가 더 넓은 바다를 실컷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눈은 좀처럼 볼 수 없었는데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걸 보니 며칠간은 정말 좋았습니다.

일주일이 지나 눈이 허리까지 쌓이니 징글징글하고 쳐다보기도 싫었습니다. 섬 끝에서 축구공을 뻥~ 하고 차면은 공이 바다에 빠질 것 같이 백령도라는 섬을 작게만 생각했는데 차를 타고 돌아도 1박2일은 꼬박 돌아야했던 큰 섬이었습니다.

후반기 포병교육을 16주 더 받고 저는 발칸중대에 배치가 되었습니다.

비행기 잡는 포병 발칸포병은 실무진에게 얼차려와 곡괭이자루를 맞아가면서 혹독한 교육을 받으면서 대공사항을 책임졌습니다.

서해전선 흑룡해병이라는 자부심과 눈앞에 바로 펼쳐져있는 북한의 섬들 장산곶, 월래도의 별을 보면서 고향생각 부모님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군 생활을 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하니 간부들이 보시고 근무를 잘 선다고 12포대 중에서 VIP포대 8포에 배치를 해주셔서 높으신 분들이 오시면 브리핑과 시범훈련을 선보이고 천연비행장에 포를 견인해서 실제사격도 했습니다.

어느덧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된다는 말년 병장이 되어서 주말에 각 소대별 축구게임이 있어서 한참을 재밌게 시합을 하고 있는데 자식 같은 후임 김이병이 갑자기 뛰어와서

김이병 - “이 해병님! 0도 0마일입니다. 어떡할까요?”

여기에는 12포대가 있는데 제가 후임병들에게 항상 교육시킨 사항이 있었습니다. 선조치하고 후보고하라고 쫄병시절부터 몸에 밴 정규지침대로 저는 “사격해!!” 라고 이병한테 사격지시를 내렸습니다.

“두루룩~! 두루룩~!” 하고 백령도 상공에 12포 중에서 우리포대만 사격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60발이 나가고 10발에 1발씩 예광탄이 하나씩 들어있었습니다. 사격 후 비행기가 지나간 흰구름 같은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저는 불안했습니다.

나 - “김이병! 공군 레이더기지에서 상황을 확실히 받았나?”

김이병 - “네! 이 해병님! 확실히 0도 0마일이라 했습니다!”

나 - “그래, 잘했어! 우리는 근무를 충실히 잘 선거야.”

하면서 떨고 있는 후임을 칭찬하고 있는데 보안대에서 날아가는 새를 보고 사격을 했다고 영창을 갈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제대를 한 달 앞두고 무슨 기막힌 상황인가 하고 풀이죽어있는데 한 시간이 지나니 실제상황이라면서 중공기를 끌고 귀순했다는 보도가 막 터졌고 기장이 백령도상공에서 사격불빛을 보았다고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60발중 10발에 하나씩 예광탄이 들어있었는데 그 불빛이었습니다.

제대 한 달을 앞두고 몇 시간 만에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긴장의 몇 시간이었습니다.

선임하사와 중대장께서는 영창 갈 준비하라고 했다가 상황이 바뀌니 특별히 보상해 줄 수 있는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근무 잘서는 해병은 직업군인으로 말뚝을 받고 나라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면서 직업군인을 권유했지만 저는 평범한 사회인이 되길 원했습니다.

참고로 상황을 날려준 공군은 2계급 특진에 포상휴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려운 여건에 서해5도를 사수하고 있는 대한민국해병들은 힘내시고 맡은 임무 충실히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498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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