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잘생긴 용이오빠, 예쁜 희은언니..글구 단기사병의 희망 석우아저씨.
여성시대. 비록 여자이지만 특히나 단필충은 정말 잘 듣고 있어요.
여자지만 제가 군대, 특히나 해병대 이야기는 왠만한 남자들보다 잘 알고 있거든요. 이유는 조금 읽어보시면 알수 있을꺼예요.
정확히 8년이 지났네요. 굉장히 무더웠던 2000년 8월 여름.
전년도(99년10월)에 군에 입대한 남친이 휴가를 나왔습니다.
남자라면 꼭 가야하는 군대. 기왕 갈거면 팔각모를 쓰겠다고 해병대에 지원 입대한 남친. 남친은 백령도에서 힘든 해병대 생활을 보내고 있었지요.
첫 휴가를 나온 지 몇 달 지나지 않아서 무슨 포상휴가를 받았다고 고참병들 세 명과 함께 3박4일의 포상휴가를 나왔습니다.
남친의 집은 서울. 그리고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제가 인천에 살 때였지요. 하필이면 남친이 휴가를 나온 그날이 저희 할아버지 생신이었습니다.
그날 가족들끼리 저녁에 외식을 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는데, 남자친구가 휴가 나왔다고 하자 부모님들께선 저녁에 데려오라 하셨지요.
남친의 연락을 받고 여객터미널로 마중을 나갔습니다. 까맣게 그을린 남친과 더욱 새까맣게 그을린 고참 세 명. 남친의 고참들이었기에 잘 봐달라는 뇌물로 점심식사라도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그럼 신세 좀 질까요?"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인천의 번화가에 모두 함께 가서 그 당시 학생이었던 제 용돈으론 부담되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칼질을 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는데, 고참 중 한명이
"이거 희숙씨덕에 잘 먹었습니다. 그럼 영화는 제가 쏠테니까 함께 가시죠~"
"어머~ 그럼 죄송한데 그냥 담에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남친과 둘이 데이트하고 싶었던 전 그렇게 거절의 멘트를 날렸는데 눈치없는 건지. 일부러 그러는 건지. 그 고참
"아닙니다. 죄송은요. 그런생각 하지마시고 함께 가시죠~"
그리고 남친을 돌아보며 못을 박더만요. "야~ 최일병 가자~"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극장까지 따라 갔고,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영화를 보고 나오니까 어느덧 어둑어둑 해지더만요.
남자친구와 고참들은 극장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그때 엄마가 어딘데 아직 오질 않냐고 전화가 오는 찰나, 그런 우연이 있을까요?
외식하러 나오신 곳이 저희가 영화를 본 극장 앞으로 오신 겁니다.
"아얏~" 하는 비명소리에 고갤 돌려보니 남친과 고참들의 앞에 전화를 건 엄마, 아빠,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계시는 할아버지.
"이놈들이 해병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물고 있어? 그것도 길 한복판에서. 니들 몇 기야?"
할아버지의 지팡이는 남친과 고참들의 머리통을 차례대로 가격했지요.
그렇습니다. 저희 할아버지요. 귀신도 얼차려 준다는 해병대 4기셨습니다.
50년 대 초에, 그때는 제주도에 계셨었다는데 자세히는 기억이 나질 않네요.
저희 할아버지 인천 상륙작전까지 참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나이 70이 넘으셨지만 할아버지 정말 정정하실 때였지요.
이젠 제가 왜 군대, 특히 해병대 얘기를 잘 아는지 아시겠죠?
저희 남친이요. 해병대 864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1기수 차이도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하늘같은 4기 선배 할아버지를 만났으니 할아버지께선 그 사람들 많은 길 한복판에서
"박아~ 일어서~ 박아~ 일어서~~"를 외치셨고 남친과 고참들은 할아버지의 구령에 맞춰 길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일어섰다 를 반복하고..
잠시후 할아버지
"이것들이 해병대이름에 먹칠을 하려고 작정했나? 젤 고참 누구야?"
그때 고참 한명 "병장~ 박환석!! "하며 앞으로 나갔고..
할아버지 께선..."니들 무슨휴가 나온거야..? 휴가보고~ 실시~"
잠시 지금의 상황에 어리둥절해하던 그 고참병..곧바로~
"필승~ 신고합니다. 병장 박환석외 삼명은 2000년 8월 22일부로..
3박4일간의 포상휴가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필승~"
할아버지의 성격을 아시는 엄마아빠는 아무 말도 못하고 웃고 계시고
전 정말 챙피했습니다만. 제 눈치만 계속 살피는 남친을 보니까 정말 불쌍하더군요.
그리고 잠시뒤 우리가족과 남친, 그리고 남친의 고참들은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허름한 실내포장마차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나마 초저녁이라 손님이 얼마 없었기에 망정이지 문제의 사건은 거기 포장마차에서 였습니다. 할아버지께선 들어오자마자 안주는 시키시지도 않고 소주부터 4병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곤 항상 신고 다니시는 새하얀 고무신을 한 짝 벗으시더니 휴가보고를 했던 고참에게 건네주시고 소주 한 병을 통째로 부으시는게 아니겠습니까.
신기하데요.
어쩜 고무신에 소주 한 병이 더도 덜도 아니고 딱 들어가더라구요.
그때 엄마가 뭐라 말을 하시려다가 "어험~" 하는 할아버지의 기침에 아무말 못하셨구요.
전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속이 울렁거리는걸 겨우 참았지요.
저희 할아버지요. 그해여름 만성무좀으로 고생하셨을 때였습니다.
그것도 통풍 잘되게 하신다며 맨발로 고무신을 신고 다니실 때였습니다.
그 고무신에 술을 부으시고 마시라 하시니 아무것도 모르는 그 고참~ 정말 잘 마시데요. 그리고 다음 고참, 맨 마지막으로 제 남친.
할아버지께서 남친이 들고있는 고무신에 술을 채우려 하실때 제가 다급히..
"할아버지~이 사람이 제 남자친구예요. 술 정말 못 마셔요. 한번만 봐 주세요. 할아버지~네?"
갖은 애교를 다 떨었건만 평소에 절 그렇게 이뻐하셨던 할아버지..
"어허~ 남자가, 그것도 해병대에 간 대한민국남자라면 누구나 하는거야."
역시나 아무것도 모르는 남친.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라는 말까지 외치며 술을 받아마셨습니다..
그날 술 한잔 안마신 제가 오히려 오바이트 나올거 같아서 죽을뻔 했지요.
그날 그렇게 헤어지고, 저 3박 4일동안 남친 얼굴 한번도 못 봤습니다.
술을 못 마시는 남친이 그렇게 술을 마셔서 그랬던건지, 아니면 할아버지의 무좀균이 배속으로 들어가서 그랬던건진 아직도 모르겠지만 제 남친 3박4일 내내 화장실에서 변기 끌어안고 살았다고 하데요.
그나마 복귀하는 날 바래다준다고 나갔는데, 고참들 오기 전에 여객터미널 뒷편에서 제게 뽀뽀하려던 남친 뒤로 밀어버렸던거 지금 생각해도 정말 미안했습니다. 근데..정말...도저히 뽀뽀 못하겠더라구요..ㅠ.ㅠ
그날 나머지 고참 세명도 봤는데 기분탓인지..모두 얼굴이 휴가나왔을 때보다 헬쑥해졌더라구요...^^;
그날 휴가 이후로 남친이 휴가 나올때 마중 나가면 아무도 없이 남친 혼자만 있더군요. 정기휴가라도 몇 명씩 함께 나온다고 들었는데, 무슨 소문이 어떻게 난건지 거짓말처럼 항상 제 남친 혼자만 기다리고 있더군요.
끝으로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는 할아버지.
지금도 그곳에서 후배 해병대원들 얼차려 주시는건 아닌지..
고무신에 술 따라 주시는건 아닌지....................할아버지..정말 보고싶어요
댓글을 올리지 못한것 .좋은글 계속 부탁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