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천 前 프로야구 감독

 

현역 선수 시절 ‘4할대 타자’로 이름을 날렸던 백인천(71·사진) 전 프로야구 감독 겸 해설가는 한때 프로골퍼로 전향2012062201033533010002_b.jpg 할 뻔했다. 골프와 야구는 이론적으로 비슷한 점이 많은 덕에 그는 독학으로 배운 골프에서 야구 못지않은 실력을 보였다. 그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시절 야구시즌이 끝나면 선수들이 골프를 치며 여가를 활용하는데 야구단 팀 간 경기는 물론 현역 프로골퍼들과도 자주 라운드를 했다.

그는 30대 시절 시즈오카(靜岡) 지역의 한 골프장에서 일본 현역 프로들과 라운드를 했다. 경기 후 프로가 다가오더니 그에게 “당장 프로골퍼가 될 실력”이라면서 프로테스트를 보라고 권할 정도였다. 이날 그는 ‘챔피언 티’에서 이글을 포함해 버디 6개를 기록하며 8언더파 64타를 쳤다. 당시 ‘아기 주먹만 한’ 퍼시먼 드라이버로 300m 이상을 날렸다. 프로골퍼보다 30~40m는 족히 더 보냈던 것. 그의 골프백에는 드라이버 외에는 우드가 아예 없었다. 웬만한 파5홀은 3, 4번 아이언으로 2온을 시켰다. 스코어도 좋았다. 그의 스코어는 못 쳐도 70대 초반, 잘 맞으면 60대 타수를 기록할 정도였다. 그는 40대 때까지 언더파를 줄곧 쳤다. 특히 하루에 36홀을 칠 경우 뛰어난 체력 덕에 후반 라운드 때 스코어가 더 좋았다.

그는 1972년 일본에서 야구시즌이 끝나고 팀 선배를 따라 골프장에 처음 갔다. 며칠 후 선배가 쓰던 골프채를 빌려 연습장에 한번 갔다 오고 나서 처음 머리를 얹었다. 일본 골프의 특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게 있다. 돈내기 대신 초콜릿내기를 했고, ‘기브’ 없이 무조건 홀아웃해야 한다. 1타당 초콜릿 하나씩 주고받는 경기였다. 처음 정식 플레이를 한 그는 전반 9홀에 무려 84타나 쳤다. ‘멀리건’도, 기브도 없고 무조건 홀아웃을 해야 끝나다 보니 파4홀에서 10타를 치기도 했다. 후반에 58개를 쳤지만 장타 덕에 머리 얹는 날 ‘버디’까지 기록했다.

그는 이듬해 시즌이 끝난 뒤 아예 골프채를 구입했다. ‘도에이 (東映)플라이어스(현 니혼햄 파이터스)’에서 활동하던 그는 1973년 처음 90대를 치더니, 이내 80대 스코어에 진입했다. 매년 오프시즌에 프로야구 선수들이 출전하는 골프대회가 두 차례 정도 열리는데 우승자에게는 자동차를 부상으로 준다. 팀별로 ‘베스트 5’를 뽑아 12팀이 겨루는 본선에 나가 겨루는 식이다. 1980년 백 전 감독도 이 대회에서 우승해 닛산 자동차와 밍크 코트를 부상으로 받았다.

그는 시즌이 끝나면 한국에 머물기도 했다. 당시 골프채를 들고 입국했더니 세관원이 골프채를 보면서 ‘뭐하는 물건이냐’고 묻던 시절이었다. 현재 어린이대공원(서울 광진구 능동)에는 ‘군자리 코스’가 있었다. 돈암동에서 시발택시를 불러 골프장에 갔다. 혼자서 골프백을 메고 다녔다. 요즘처럼 회원권도, 부킹도 필요 없고 돈만 내면 골프를 칠 수 있었다. 골프를 치면서 한장상, 이일안 프로와 함께 어울렸다. 스코어보다는 멀리 치는 데 흥미가 있었다.

그의 장타에 얽힌 에피소드. 1985년 지인들과 경기 용인의 골드골프장에 갔는데 당시 마스타코스 6번홀(파4)에는 이색 상품이 걸려 있었다. 티샷을 연못에 넣은 골퍼에겐 우산을 줬다. 티샷을 250m 이상 보내야 빠지는 거리였다. 백 전 감독은 동반자들이 보는 데 연못을 넘겼다. 300m 이상 날린 것. 그의 공은 그린까지 30m 정도 날았다. 공이 연못을 가볍게 넘어가자 캐디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개장한 지 한두 해 지났던 이 골프장에서 처음있는 일이었다. 이 골프장의 오너였던 고교(경동고) 3년 선배인 이동준 회장에게 “우산 10개는 받아 가야 한다”고 우겨 동반자들과 캐디까지 하나씩 나눠 줬다.

그는 19세 때 혈혈단신 야구로 성공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 19년 동안 일본 프로야구 정상을 지켰고, 1982년 국내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왔다. 마흔을 갓 넘긴 그는 MBC청룡에 선수 겸 감독으로 입단했고, 1년6개월 후 삼미슈퍼스타즈로 이적해 선수로 뛰었다. 그후 MBC청룡이 LG로 넘어가면서 지휘봉을 잡은 그는 창단 첫해 우승했다. 이후 삼성, 롯데 감독을 역임했다.

어마어마한 비거리 덕에 이글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했지만 홀인원은 딱 한 번 했다. 1995년 경기 하남 동서울골프장(현 캐슬렉스) 7번홀(파3·140m)에서 기록했다. 오르막 그린이어서 8번 아이언을 잡고 친 게, 그린에 올라가더니 홀에 들어가 있었다.

최근에는 고교 동창 중 유도선수 출신으로 현재 경기 파주에서 택시회사를 운영하는 친구를 비롯, 몇몇 동창들과 월 1, 2회 정도 골프를 나간다. 요즘은 늙어가는 친구들과 함께하다 보니 승부욕과 집중력이 떨어진 탓에 더블보기와 트리플보기도 속출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백 전 감독은 사업을 하던 1996년 뇌경색으로 쓰러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쓰러진 지 15년이 지난 다음 그는 건강전도사가 됐다. 처음 쓰러졌을 때 치료해 준 주치의와 침술가, 한의사 등을 자주 찾아가 건강관리법을 배웠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백인천의 건강프로’를 집필 중이며 한 달 후쯤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병은 남이 고쳐 주는 게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실천으로 고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최명식 기자 mschoi@munhwa.com, 사진 = 김호웅 기자
<출처 문화일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62201033533010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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