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9월의 마지막 날이라 더욱 바쁜시간을 보냈습니다.
지양훈 후배와 업무협의를 오전중에 마무리하고 문홍식 선배님의 원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37년 전 3연대1대대 근무 시 당시 연대장인 신인균 대령(해간5기) 과의 점심약속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업무관계로 알게된 동종업사장을 통해 신인균대령님과의 해후가 주선되었다.
당시 하후90기로 71.11 하사임관 후 바로 3연대에 배속되어 그분과의 짧은 교류는 내 인생에서 커다란 감명을 주었다.
항상 대원들을 자식과 같이 보살피고 정신건강과 육체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그분의 지휘통솔은 지금도 생생하며
미 해병대모자를 멋있게 쓰고 휠잠바를 걸치고 헬기를 타고 해안방어 부하들을 격려하는 그분의 정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사단은 3연대,5연대, 11연대로 항상 부대평가와 체육대회에서 3연대가 제일이었으며 해병대에서 연대가가 있는 부대는 3연대가 유일하였다.
"조국의 정의자유 힘으로 탈취하는 해병대 궂게뭉친 그 깃발 여기있다 --- 중간 생략-- 최강의 그 이름은 3연대나간다!!"
연대 과업정열 시 힘차게부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분의 아드님은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하야시로 데뷰한 신현준으로 아직도 미혼으로 며누리와 손자를 본것이 가장 아쉬운 현실이었다. 문홍식선배님과는 문선배님이 사령부비서실 근무시 그분이 비서실장이었으며 3인의 인연이 새로워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상으로 전 3연대장님 해후기 보고를 마치며 10월13일 선후배님들을 만나뵙겠습니다. 이상--!!필승
지양훈 후배와 업무협의를 오전중에 마무리하고 문홍식 선배님의 원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37년 전 3연대1대대 근무 시 당시 연대장인 신인균 대령(해간5기) 과의 점심약속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업무관계로 알게된 동종업사장을 통해 신인균대령님과의 해후가 주선되었다.
당시 하후90기로 71.11 하사임관 후 바로 3연대에 배속되어 그분과의 짧은 교류는 내 인생에서 커다란 감명을 주었다.
항상 대원들을 자식과 같이 보살피고 정신건강과 육체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그분의 지휘통솔은 지금도 생생하며
미 해병대모자를 멋있게 쓰고 휠잠바를 걸치고 헬기를 타고 해안방어 부하들을 격려하는 그분의 정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 사단은 3연대,5연대, 11연대로 항상 부대평가와 체육대회에서 3연대가 제일이었으며 해병대에서 연대가가 있는 부대는 3연대가 유일하였다.
"조국의 정의자유 힘으로 탈취하는 해병대 궂게뭉친 그 깃발 여기있다 --- 중간 생략-- 최강의 그 이름은 3연대나간다!!"
연대 과업정열 시 힘차게부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분의 아드님은 영화 "장군의 아들"에서 하야시로 데뷰한 신현준으로 아직도 미혼으로 며누리와 손자를 본것이 가장 아쉬운 현실이었다. 문홍식선배님과는 문선배님이 사령부비서실 근무시 그분이 비서실장이었으며 3인의 인연이 새로워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상으로 전 3연대장님 해후기 보고를 마치며 10월13일 선후배님들을 만나뵙겠습니다. 이상--!!필승
9월에 마지막 멋지십니다...원강이면 좀 부르시지용~~